변명

2015. 10. 6. 02:46In the Box


올 여름에 얼결에 이름을 하나 얻었다. 피렌체에서 그림을 한 점 사고, 내 이름을 적어달라고 했는데, 화가 아저씨가 스펠링을 잘 못 알아들어서 내 이름 비슷한 외국 이름을 써주었다. 이미 쓰인 글자에서 어떻게든 수정을 해보려고 하다가 (결국 적힌 이름은 내 이름도 그가 지어준 밀레나도 아닌 둘이 섞인 글자가 되었다) 쿨하게, 내가 이탈리아 이름 지어준 거라고, 너한테 잘 어울린다던 그. 근데 또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던 나. 


피렌체와 그림과 그 아저씨의 기억이 담긴 이름. 와 예쁜 이름! 하면서 신난 것과는 별개로 이 이름을 내가 쓸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 지나온 닉네임의 역사를 구구절절 읊다가 지워버렸다. 

변덕인지 만족을 못하는 건지, 어쩌면 둘 다 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나는 자주 바꿔댄다. 아이디, 닉네임, 블로그 계정이나 메일 계정이랄지 하는 것들을. 

지나온 것은 적당히 잊고 적당히 기억한다. 


오래 썼던 이름들은 그 단어가 꼭 그 시간들인 것 같아서 애착마저 가지만 그런 것들도 갑자기 바꾸고 싶은 때가 온다.

혹은 바꾸고 바꾸다가 결국 초기에 쓰던 것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어쩐지 외벽을 자꾸자꾸 덧칠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덧칠 하다보니 웬걸, 너무 낯설어 마음이 불편하게 된다. 나를 계속해서 새롭게 소개하고 새롭게 만드는 건 무슨 의미일까? 새롭다고 해야 할지, 버리고 지운다고 해야 할지.


얼마전 이 블로그에서도 한번 더 바꿨다. 오래 전의 이름을 가져왔다. 이건 '다시'일까 '결국은' 일까? 



그런데 사실 그것들은 다 나고 전부 내가 아니기도 하다. 그래서 별 거 아닌 일이고, 또 이렇게 복잡해질 일이기도 한 것이다.

쓸데없이 복잡해지는 게 내 소일거리지만 언제나 기승전결따위 없는 주절거림이므로, 오늘치 주절댐도 기승..끝 'ㅇ'




한줄 요약: 변명變名의 변명辨明, lllil이 mano가 되었습니다. (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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