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쓸모, 대학내일

2016. 3. 10. 15:22In the Box

꼭꼭 씹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들이 있다. 문장이나 사진, 취향같은 것도 그렇고, 어떤 위로나 공감같은 것들도.




https://univ20.com/32071


<불안의 쓸모>

전아론

대학내일



가끔 그런 밤이 있다. 평소처럼 똑같이 불을 끄고 누워 잠을 청했는데 머릿속 스위치가 도통 꺼지지 않는 밤. 하루 치의 피로가 이불처럼 내 몸을 감싸고 있는데 정신은 괴롭도록 또렷하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자세를 바꿔 봐도 잠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만 하고, 뻘처럼 질척한 어둠만 눈앞에 들러붙어 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이런밤이있을거다.


...


그녀가 자리에 앉아 “저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요” 하고 자책하고 있으면 할머니가 “아가, 들어갈 때 실컷 마셔라, 거시기 쪼끄만 것들이 뭐라뭐라 시벌시벌 떠드는 거는 신경도쓰지 말그라잉” 하면서 그녀가 좋아하는 돼지 간을 척척 썰어 더 얹어줬단다. 그 말이 뭐라고 책을 읽던 나는 눈물을 왕,터트렸다. 여든 넘은 할머니 앞에서는 그녀도 나도 ‘아가’이고, 술 들어갈 때 실컷 마실 나이이고,뭐라 뭐라 떠들어 대는 것들에 매일 흔들릴 때이다. 하물며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20대 독자들은 어떠랴.


...


그 때까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 우리의 불안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 이게 정말 나의 불안인지, 누군가가 내게 던져놓고 간 불안은 아닌지. 그 생각만 놓지 않는다면 우린 아직 괜찮다. 좀 더 불면의 밤을겪고 술도 많이 마시고 깨지고 부서지고 하면서 살아도 된다. 오로지 우리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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