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바다 (2018)

2018. 12. 31. 15:56The Moment/Traveling

"바다 좋아하지?"라는 말을 많이 듣고 "바다 너무 좋아!!" 라고 많이 말했던 2018. 올해는 유독 바다에 많이 갔고 바다를 더 사랑하게 됐다.

 

올해의 바다들과 짤막한 바다 여행기

 

1월의 바다

필리핀 보홀, 팡라오 바다, 나의 첫 원정 프리다이빙

 

미친 프로젝트로 몸과 마음이 다 너덜너덜했던 17년 연말과 18년 연초. 거의 한 달을 새벽 두 세시에 퇴근하고, 전략을 만들었다가 폐기했다가, A안으로 갔다가 B안으로 갔다가 똥개훈련 같은 생난리를 쳤다. 까라면 까래서 빡쳐도 깠는데 왜 깠냐고 까이는 것을 무한 반복하며 멘탈이 아주 파스스 너덜너덜 걸레짝이 따로 없던 때.

 

이런저런 이유로 연차 하루 내기도 어려웠던 쪼렙 사원은 비행기 표부터 지르고, 한방에 이틀이나 내버렸다. 지금, 당장 안 가면 난 정말 죽을 거야.

 

고작 이틀 연차에 그런 비장한 심정까지 품었던 어이없는 올해 1, 잊지 못할 바다를 만났다.



너무 바빴던 때라, 여러 가지 결정이 아주 빠르고 깊은 생각 없이 이루어졌다. 심지어 비행기 표를 샀을 때는 레벨1을 딸 생각도 없었다. 그냥, 강사님이 있으니까 좀 해볼 수 있으려나? 싶은 마음으로 그리고 다들 보홀 좋다던데? 하는 팔랑귀 덕분에 보홀행 직항 티켓을 아주 급하게 그리고 비싸게 끊었다. 그리고 한참 고민하다가 이왕 가는 거 프리다이빙 레벨 따오자 싶어 레벨1 교육까지 신청했고 시발비용이란 이런 것이구나, 아주 뼈저리게 느끼며 보홀로 떠났다.



보통 해외 투어를 계획하면 풀장에서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고, 연습도 많이 하고 가기 마련인데 난 정말 하나도 모르고 거지 같은 컨디션으로 무작정 갔다. 레벨1에 어떤 테스트를 보는지도 잘 모르고 갔으니 말 다 했지. 교육과 테스트를 위해 나갔던 바다는 생각보다 더 까맣고 차가웠고 무서웠다. 한 번도 물을 무서워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마스크와 몸을 죄는 압력에 당황했고 숨도 너무 짧아 침착하지를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게 패닉이었던 것 같다. 바다가 무서워졌고 더 내려가기도 싫었던, 당황스러운 나의 첫 프리다이빙 바다. 이퀄은 안 되고 바다는 무섭고 몸 상태는 여전히 거지 같았다.

 

그렇게 첫날 교육은 9m로 끝나고, 다음날 바다를 기약해보기로 했다. 바다를 무서워하면 프리다이빙 못 해요. 라는 강사님의 말이 마음에 박혔다. 나 원래 바다 안 무서워하는데, 안 무서운데, 왜 그럴까...

 


그날은 자기 전에 이퀄 연습을 열심히 해보았다. 다른 생각은 없었고, 다음 날은 꼭 내려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뿍뿍! 다행히도 벼락치기 연습이 정말로 도움이 되었고, 둘째 날 바다는 조금 덜 무서웠고, 간신히 레벨1 테스트에 통과할 수 있었다!!

 

마지막 테스트를 마치고 수면 위로 떠 오를 때, 그 벅찬 기분은 오래도록 잊고 싶지 않다. 누가 보면 한 30m라도 내려갔다 온 줄 알겠지만, 10m가 어찌나 뿌듯하던지. 짙은 암청색 바다의 색과 내려갈수록 차가워지는 온도, 어젠 무서웠지만 오늘은 왠지 안심이 되는 바다의 압력, 햇빛이 쏟아지는 수면과 그 아래로 일렁이는 빛 커튼.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심지어 난 어복 있는 프린이. 이날 귀하디귀한 만타레이를 봤지! 수면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한참 밑으로 천천히 지나가던 그 거대한 움직임, 뿔과 꼬리, 무늬까지 하나도 잊지 않으려고 눈에 꼭꼭 담아두었다. 인간과는 전혀 상관없이, 유유히 깊은 바다로 사라져버린 만타. 사진도 영상도 찍지 못해 아쉽지만, 떠올리면 씩 웃게 되는 말도 안 되게 기분 좋은 기억을 추가한 것 같아 지금도 꿈같고 뿌듯하다.

 

그래, 다시 생각해보면 난 정말 어복이 있나 봐. 보홀에서는 돌고래도 봤다. 돌핀투어에서 돌고래를 볼 확률은 높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때에 따라 못 볼 수 있다고 하던데, 세상에, 이렇게 많은 돌고래를 볼 줄이야! 한참을 돌고래를 찾아 헤매던 우리 배 앞에 수많은 돌고래가 떼를 지어 지나갔다. 매끈한 돌고래들이 줄 맞춰 바다에서 푝푝 튀어 오르는 모습, 생각보다 작은 꼬리, 아기 돌고래의 조그만 지느러미까지 숨도 못 쉬고 눈이 빠져라 지켜보았다. 나도 모르게 꺅꺅 소리를 질렀던 것도 같다.

 


보홀에서의 마지막 바다는 사우스팜의 프라이빗 비치. 이틀은 교육을 받고 하루는 바쁘게 투어를 했으니 마지막은 편하게 쉬자는 마음으로 비싼 리조트를 골랐고, 마지막까지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한갓진 바다를 보며 썬배드에 누웠다가 해먹에도 눕고 바다에 누워 둥둥 떠다니면서 눈물 나게 행복하다는 감정은 이런 거였지, 곱씹었다.

 


고요하고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 그늘에 누워있을 때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뜨거운 햇살, 커다란 야자나무, 바람에 흔들리는 해먹과 함께 흔들리는 나뭇잎.

 

행복이란 감정을 까먹을 때 다시 보며 되새기려 사진과 영상을 많이 찍었다. 1월의 바다는 올해 참 많이도 돌려보았다.

 

1월의 바다에서 돌아온 나를 본 모든 사람이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딱 죽고 싶었던 사람이 행복했어요, 라고 웃을 수 있게 되었다.

 



2월의 바다

강릉 어느 해변. 평창올림픽 그리고 흐린 바다 드라이브

 


바다를 보러 간 건 아니지만, 어김없이 바닷가에서 하염없이 파도를 보다가 돌아온 강릉. 어딜 가도 보이던 수호랑과 반다비가 귀여웠고, 따뜻한 동남아의 바다가 그리웠지만 차 안에서 보는 비 오는 강릉의 겨울 바다도 좋았고, 해변을 끼고 달리던 드라이브도 좋았다.

 

어둑하고 을씨년스러운 겨울 바다, 바람도 미친 듯 불고 아무리 껴입어도 추운 겨울 바다. 그런데도 그 시린 물빛이 가끔 아른거린다. 바다는 언제나 그리운가 봐.

 



3월의 바다

인천 영종도 바다. 짧고 굵은 바닷가 호캉스

 


엄마랑 고모랑 갔던 영종도 네스트 호텔. 엄마가 갑자기 친구가 다녀왔다던 네스트 호텔이 가고 싶다고 했고, 아빠가 출장 갔을 때 그맘때쯤 집에 자주 놀러 오던 고모와 함께 셋이서 호캉스를 가기로 했다.

 


룸 컨디션도 좋았고 날은 추웠지만 바다가 찔끔 보이는 작은 노천 풀에서 수영도 하고 바닷가에서 회도 먹고. 우리끼리만 할 수 있는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술 먹고 발개진 뺨은 아직 찬 바닷바람에 식히고.

 

방에서 마시기로 한 와인이 맛이 없어서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즐거웠지

 


 

5월의 바다

제주 함덕과 세화 바다.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떠난 바다

 

연차 하루 내는 것도 눈치 보던 쪼렙 사원은 조금 더 자신의 권리를 잘 챙기는 사원으로 진화했다! 석가탄신일 샌드위치 연차를 내고 다녀온 제주. 오랜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 오랜만에 가는 제주라 무척 설렜다.

면허 없는 뚜벅이라, 가고 싶은 곳들이 모여있는 곳에 숙소를 잡아야 했다. 예전에도 함덕에 숙소를 잡고 제주를 여행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차가 있어서 오히려 멀리멀리 다녔다. 함덕에는 서점도 있고 꽤 맛있다는 파스타집도, 가보고 싶은 술집도 있었다. 함덕 당첨!

 


5월 제주는 꽤 추웠다. 바다에 들어갈 수 있으려나 기대하고 수영복도 챙겼건만 말도 안 되는 바람이었다.

 


 

바다가 잘 보이는 카페 요요무문에서는 가끔 운이 좋으면 돌고래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흐렸지만 예뻤고 돌고래는 보지 못했다. 함덕에서는 만춘서점에 들러 책을 잔뜩 샀는데, 이날도 만춘서점에서 산 <아무튼 외국어>를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서 읽었다. 책도, 당근케이크도, 바다가 예쁘게 담기는 창가 자리도 좋았다.

 

하염없이 해변 도로를 걷기도 했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때라, 걷다 보면 생각이 좀 정리될까 싶었지만, 걷고 파도 소리를 듣고 바다를 보느라 아무 생각도 떠올리지 못했다. 날씨가 좋지 않아 바다는 거셌고 성난 파도 소리에 왠지 조금 숙연하고 심란한 기분으로 걸었던 것 같다. 종일 바다를 옆에 두고 걸었더니 귓가에 계속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했던 5월의 제주.

 



다음 날에는 세화에 갔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날씨가 너무 좋아져서 신나게 사진을 찍었던 날. 그래도 조금 추워 바다엔 못 들어갔다. 세화해변은 처음 가보았는데, 제주다운 돌 해변과 새파란 바도, 그만큼 파란 하늘이 너무 아름다웠다. 추천받은 노래를 들으면서 바위에 앉아 또 하염없이 바다만 봤다. 돌아가면 힘들겠지 하는 생각에 영상도 많이 찍어두었던 것 같다.

 



조금만 더 따뜻했다면 자리 깔고 누워 한잠 잤을 텐데, 그러기엔 좀 서늘해서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술 한잔 하며 또 바다를 봤다. 오래 기억해야지, 하고 바라봤던 풍경은 그 마음 때문이라도 오래 남는 것 같다.

 



6월의 바다

부산 광안리 해운대 기장 바다. 바다 사람에게 딱 맞는 출장 코스

 


6월엔 부산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회사에서도 내내 바다바다 노래를 불렀는데, 여름 특집으로 바다가 보이는 매장 취재를 하게 되었다. 광안리부터 해운대, 달맞이 고개, 기장까지 하나같이 예쁜 바다들. 광안리는 반가워 좋았고 해운대는 생각 외로 좋았고, 달맞이 고개에서 보는 바다는 깊고 푸르러서 좋았고 기장 바다는 거세고 분위기 있어 좋았다.


사실 난 해운대에 편견이 있었다사람 많고 더럽고 헌팅하는 바닷가그래서 내일로로 부산을 찾았을 때도 해운대는 굳이 가지 않았고 그 후로도 부산에서 해운대를 가는 일은 없었다광안리 바다도 예쁜데 뭘.




 

그런데 왜 가보지도 않고 그랬을까, 해운대 이렇게나 예쁜데. 모래사장도 너무 예쁘고 파도도 어찌나 예쁜지. 토요일에 부산으로 놀러 온 친구와 한참을 걷고 사진 찍으며 바닷바람을 받았다. 딱 보고 싶던 그런 바다. 다음에 또 놀러 올게.

 


 

7월의 바다

동해 망상 해수욕장 그리고 양양 낙산 해수욕장. 바닷가의 음악페스티벌


7월엔 그린플러그드 동해에 다녀왔다. 새소년이 나온다고 해서, 그리고 바닷가에서 열리는 그린플러그드라고 해서 안 갈 이유가 없었지. 도착하자마자 수영복을 갈아입고 바다 뛰어들기! 여름에도 차가운 동해 바다에 둥둥 떠서 물장구를 치며 듣는 락페라니, 돌이켜봐도 그때의 내가 부러울 만큼 행복했다. 낮에는 뜨거운 햇빛을 피해 물속으로 숨고, 밤에는 맥주에 취해 바다에서 첨벙거리며 방방 뛰었던 여름다운 여름날.

 




동해 바다 다음엔 양양의 바다로. 월요일 연차가 이렇게 좋습니다. 한가한 낙산 해수욕장에서 분홍빛 낙조를 구경하고 우리밖에 없던 파스텔톤 저녁 바다에서 웃고 떠들고 사진을 찍고. 별 쏟아지는 드라이브를 즐기고. 돌아와서는 또 왕창 취해 이전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또 한 번 바다에 푹 잠겨있던 7월의 양양.

 



8월의 바다

태국 끄라비, 아오낭 비치와 피피섬 바다. 여름휴가

 

여름 휴가도 당연히 바다로 가야지! 예쁜 바다를 고르고 고르다 태국 끄라비에 다녀왔다. 바다에 둘러싸여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숙소를 예약했는데, 들어가는 날 비가 너무 많이 오고 5분 차이로 셔틀 배를 놓치는 바람에 고생고생 생고생으로 시작한 끄라비 일정.

 


짐 풀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니 날씨가 딱 개서 저녁엔 노을을 볼 수 있었다. 수영장 노을 뷰 사진에 반해서 정한 숙소였는데, 다행히도 사진만큼 아름다웠던 노을.

 


리조트 앞바다는 기대보단 조금 덜 예뻐서 아쉬웠지만 피피섬 투어에서 사랑하는 바다를 만났지. 뱀부 아일랜드는 항상 생각하는 그 맑은 에메랄드빛 바다. 모래는 하얗고 물은 투명하고 날씨는 또 얼마나 좋았는지. 오래 만난 애인과 처음으로 같이 하는 물놀이라서 좀 더 즐거웠다. 블루 라군의 푸른 물빛과 바다를 둘러싼 거대한 절벽까지, 종일 끝내주는 풍경을 보며 물속에 잠겨 있어 행복했던 바다.

 




끄라비는 가까운 바다는 물놀이를 하기보다는 산책하거나 배 깔고 누워 뒹굴뒹굴하기 좋고, 먼바다가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것 같다. 아오낭 비치도 대천해수욕장 같다더니 정말 그래서 실망스러웠는데 해지는 아오낭 비치가 이렇게나 로맨틱할 줄이야. 덕분에 많이 걸었고, 많이 마셨다.

 

 


11월의 바다

다시 강릉, 안목해변. 강릉 친구 방문

강릉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던 11, 스물한 살에 쪼들과 왔던 강릉 안목 해변에 다시 왔다. 벌써 그게 몇 년 전이냐며 기억을 맞추고 그때부터 찍기 시작한 우리의 시그니처 포즈로 사진도 찍고, 돈 버는 으른 된 기념으로 비싼 회도 먹고.


 


강릉은 늘 겨울에 오는 것 같다고 다시 한번 생각한 날. 찬 공기 들이켜고 눈 시린 바닷바람 맞으면서 보는 파란 강릉 바다, 아무래도 강릉은 겨울에 참 잘 어울려.

 



12월의 바다

다시 필리핀 보홀, 팡라오 바다. 두 번째 원정 프리다이빙 그리고 고래상어

 

올해가 가기 전에 또 보홀에 가게 될 줄은 정말 몰랐지만, 보홀에 다녀왔다. 혼자였다면 정말 못 갔을 텐데, 좋은 사람들과 좋은 타이밍으로 또 서로 조금씩 으쌰으쌰 하면서 다녀왔다. 종일 바다에 잠겨있어 생각보다 사진을 많이 찍지 못 한 것이 아쉽다.

 

이번에도 첫 번째 바다에서는 조금 헤맸다. 프렌젤인 줄 알았던 것이 BTV였고, 7m까지는 괜찮은데 그 이상으로는 세기가 너무 약해 안 뚫렸다. 나도 버디도 10m를 못 내려갔던 첫날의 바다.

 

결국 강사님이 우리 그냥 사진 찍고 놀까요? 해서 조금 내려놓고 놀고 있는데, 세상에. 갑자기 고래상어 등장! 저쪽 부이에 있던 사람들 옆으로 가족으로 보이는 큰 두 마리, 작은 한 마리 총 세 마리의 고래상어가 바로 아래로 지나갔다는 것. 우리 셋은 부이도 내팽개치고 미친 듯이 고래상어를 보러 달려갔다.

 

 

실은 대여한 핀이 조금 커서 핀이 달랑달랑 벗겨지기 직전이었고, 왜인지 다리에 자꾸 쥐가 나서 별로 좋은 상태가 아니었는데 강사님과 버디가 정말 미친 스피드로 망망대해를 가로질러 떠나고 있었다. 여기서 저 두 사람을 놓치면 나는 진짜 큰일 난다는 생각에 덜컥 무서워졌고 버디의 핀 끝만 보면서 함께 질주했다. 고래상어도 보고 싶었지만 잘못하다간 바다에서 길 잃겠다 싶어서 더 열심히 따라갈 수밖에 없었지. 그렇게 절실하게 따라갔지만 고래상어 가족은 너무 먼 곳에 있어서 나는 떠나가는 제일 작은 고래상어의 꼬리만 겨우 볼 수 있었다. 깊은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등과 꼬리, 그 무늬만 보았어도 짜릿했다.

 


다시 우리 부이로 돌아와서 터질 것 같은 다리를 부여잡고 진정하려는데 저쪽에서 다시 고래상어가 나타났다는 비명이 들렸다. 이번엔 배가 가까이 있어서 정신 없이 배에 올라타고 (분명 조금 전까지 다리에 쥐 나고 팔에 힘 풀려서 물에도 겨우 떠 있었는데 힘든 줄도 모르고 한 방에 배에 올라갔다) 고래상어 가까이 내려 바다로 들어갔다.

 


이번엔 정말 코앞에서!!! 아름다운 무늬가 눈앞에 생생했고 바닷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무리가 고래상어 옆으로 피어올랐다. 조금 작은 녀석이었는데 아예 우리랑 놀 생각이었는지, 오르락내리락 앞으로 갔다 돌아서 왔다가 우리 주변을 한참을 수영했다. 열심히 꼬리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리 쪽으로 얼굴을 돌려서 입 벌리고 다가오는 바람에 놀란 비명이 물속에서 들리고, 고래상어는 또 유유히 옆을 지나갔다. 너무 웃기고 귀엽고 경이로운 순간.

 


너무 열심히 달려온 바람에 숨이 딸려서 오래 잠수하진 못했지만, 잠깐이나마 고래상어 옆을 헤엄쳤고 사진도 남았다. 손을 뻗으면 닫을 정도로 가까웠던 고래상어, 놀아줘서 고마웠어. 덕분에 보홀은 영영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야.

 

첫날의 다이빙은 고래상어로 마무리하고, 다시 두 번째 트레이닝. 한방에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바다에 적응하는 시간이 조금 필요한 것 같다. 두 번째 날의 바다는 파도가 정말 높았지만 그래도 첫날보다 수월하게 바다에 적응했고 전날 또 벼락치기로 열심히 연습한 프렌젤도 뚫려서 17m까지 내려갔다. PB 경신! 미친 듯 흔들리고 높았던 파도에도 몸을 맡기고 릴렉스하는 기분도 정말 좋았고, 프리폴의 아찔함도 살짝 느끼고 프렌젤까지 빵빵 뚫렸던 감사한 두 번째 날의 바다.

 

세 번째 바다는 모두가 함께 보러 간 예쁜 바다. 발리카삭과 푼토에 다녀왔다. 컨디션이 정말 안 좋아졌지만 바닷속에서는 괜찮았던 웃긴 날. 바다에 들어가면 신이 나고 배로 올라오면 또 죽어가고 바다에 들어가면 또 신나고, 뭍으로 올라와서 가장 상태가 안 좋아졌다. 하하.

 


컨디션이 안 좋아도 신이 날 만큼 발리카삭과 푼토는 너무 아름다웠지. 1월에는 발리카삭에 사람도 너무 많고 덕다이빙이 잘 안 돼서 깊이 못 들어갔는데 이번엔 깊이 들어가서 거북이를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었다. 거북이는 귀엽고 빠르다.

 

산호가 아름답다는 푼토, 푼토는 정말 화려한 바다 정원 같았다. 이 포인트에서도 파도가 너무 높아 몸을 가누기 힘들었는데, 그래서 고요한 바닷속이 더 좋았다. 흐린 하늘, 거센 파도를 뒤로하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흐렸던 시야가 맑아지고 색색의 산호와 그보다 더 색색의 물고기들이 있다. 내 상상 속의 산호는 물론, 처음 보는 모양의 산호들이 한 몸처럼 어우러져 있었고 꽃잎 흩날리듯 모여들었다가 흩어지는 작고 예쁜 색의 물고기들, 자유롭게 그사이를 오갈 수 있음에 벅차던 보홀, 푼토.

 

이번 보홀 여행에서는 정말 다 이루었다. 고래상어도 보고 PB도 경신하고 발리카삭 푼토 포인트 다이빙도 클리어! 좋은 사람들과 간 덕에 뭍에서도 행복했던 복 많은 프린이의 프리다이빙 여행.

 

올해의 처음과 마지막에 보홀의 바다를 만나서 행복했다.

 

 

 

떠나려고 마음 먹으면 꼭 바다로 가게 되었던, 항상 바다에 가고 싶었던 2018,

오래오래 아끼면서 떠올릴 올해의 바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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