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취미, 러닝

2020. 9. 13. 09:38in Vancouver

러닝을 꾸준하게 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 이 풍경

친구들과도 잘 만나지 못하게 되고 거의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거나 테이크아웃만 되고 갈 수 있는 곳은 공원 정도밖에 없었을 때, 러닝을 시작했다. 맨몸으로 당장 시작할 수 있고 혼자 할 수 있는 야외 활동은 러닝뿐이었다.

사실 나는 움직이는 걸 꽤 귀찮아하고 오래 걷는 것도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고 수영 말고 다른 운동은 영 젬병인 둔한 인간이다. 특히나 무릎이나 발목이 약해서 달리기는 정말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을 땐 어쩔 수 없지. 방 안에만 있기엔 너무 심심했고 이러다간 정말 많이 우울해할 것 같고, 마냥 걷기만 하는 것도 슬슬 좀 지루했으니까. 상황에 등 떠밀려 어쩌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러닝을 처음 시작한 건 4월 말, 한국에서 먼저 코로나 집콕을 경험한 친구의 추천으로 런데이를 깔았다. 3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이 목표고 1분 뛰기, 2분 뛰기, 5분 뛰기 이렇게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며 오래 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러닝 앱이라고 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1분은 겨우 뛰지만 그다음 1분은 못 뛰던 사람. 30분을 연속으로 뛸 수 있게 해 준다고? 목표로 세우긴 했지만 그렇게 믿진 않았다. 하지만 5분이라도 제대로 뛰는 사람은 되어 보고 싶었다.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늘 궁금해했으므로.

일주일에 세 번, 총 8주 차로 구성된 30분 러닝 코스를 시작했다. 첫 세션은 1분 뛰고 2분 걷는 것을 5번 반복하기. 첫 러닝은 어땠더라. 뛰고 있다는 것이 어색했고 다리를 어떻게 팔은 어떻게 등은 어떻게 해야 할지도 전혀 몰랐다. 생각보다는 수월했지만 그렇다고 또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할 만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경쟁하지 않고 건강해지기 위해 뛰는 거라는 보이스 코치의 응원도 마음에 들었다. 꾸준히 한 번 뛰어보기로 했다. 핑계 삼아 운동화도 사고 러닝용 티셔츠랑 스포츠브라, 러닝 양말도 마련했으니까 꾸준히 뛰어야지.

주 3일을 꾸준히 뛰지는 못했지만, 보통 일주일에 두 번, 최소한 한 번은 뛰었다. 1분이 가뿐해졌고 2분도 슬슬 뛰었고 3분짜리 노래 하나를 듣는 내내 뛸 수 있게 되었을 땐 좀 짜릿했다. 그렇지만 목표를 다 못 채우는 날도 많았다. 더 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냥 포기하고 싶어서 그만 뛴 날도 있었고 무릎이 아파서 한 2주 쉬기도 했다. 6분이나 7분쯤을 세 번씩 뛰어야 하는 어떤 세션에서는 마지막 달리기를 통으로 날리고 운동을 마무리한 적이 있다. 채워야 하는 시간을 다 채우지 못했으니까 다음번에 한 번 더 같은 세션을 뛰어야 했다. 그전까지는 한 단계를 완벽하게 끝냈을 경우에만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러면 다음에 뛰기가 싫을 것 같은 거다. 그래서 그냥 다음 세션으로 넘어가 버렸다. 신기하게도 다음 세션은 별로 힘들지 않게 끝까지 뛸 수 있었다. 보이스 코치가 한 단계 성장했다고 칭찬해줬는데 그게 좋아서 웃겼다.

100을 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100을 채우지 않더라도 다음에 120을 할 수 있다. 조금 포기해도 다음에 뛰러 나오기만 하면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 그렇게 마음에 쿠션을 깔았다. 좀 더 마음 편하게 뛸 수 있었다. 나는 원래 1분도 못 뛰었는데 10분 뛰는 거 진짜 짱이다, 이렇게 셀프 칭찬도 하면서.

뛰러 나가기는 좀 귀찮았고 뛸 때는 죽을 것 같았지만 뛰고 나면 열이면 열 기분이 좋았다. 120을 넘어 200도 할 수 있게 되면서 뛰는 게 더 재미있어졌고 자신감도 넘쳤다. 코어에 드디어 힘도 좀 들어가는 것 같고 살도 좀 빠져서 기분이 더 좋았지. 굽은 등도 배에 힘을 주면 펴지는 걸 깨달았다. 운동 부족이긴 했지, 내가.

여름이 되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느라고 러닝을 미루기도 했지만 자주 뛰러 가던 코스가 더 반짝반짝 예뻐서 그 풍경을 보기 위해서라도 어쨌든 나가서 뛰었다. 원래는 8주 코스지만 나는 두 배 이상 걸려, 9월에 들어서야 30분 연속으로 뛰기에 성공했다. 마지막 30분 연속 뛰기 세션에서는 끝나기 30초 전에 남은 시간 동안 전력으로 달려보라고 했다. 무시할까 하다가 한 번 전력으로 빠르게 뛰어봤는데 꽤 잘 달렸던 것 같다. 다리를 쭉쭉 뻗었고 속도감이 온몸으로 느껴지고 그런데 이게 별로 안 불편해 안 힘들어. 와, 이럴 수가 있나? 뿌듯했다. 절대 뛸 수 없을 것 같은 나도 뛸 수 있구나. 

첫 번째 비기너 코스를 다 뛰었으니 이젠 두 번째 비기너 코스를 뛸 생각이다. 코로나 때문에 모든 러닝 대회가 취소된 건 아쉽지만 버츄얼 런이 많으니까 한 두 개쯤 골라서 참여해보려고도 한다. 이런 모습이 나 스스로도 좀 낯설지만, 이 새로운 취미가 아주 만족스럽다. 

코로나 시대에 찾아낸 새로운 즐거움, 아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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