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4)
-
친구들의 집
밴쿠버를 떠났고 다시 한국이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이곳저곳 지원하고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밴쿠버에서도 이력서를 쓰고 여기저기 뿌리며 기다리는 일상을 지냈던 때가 있었지만 마음과 현실의 무게가 같을 순 없겠지. 코로나는 점점 더 심해지고 구직 시장도 얼어붙어 쌩백수의 마음은 쓰라리다. 불안해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과 내가 이 불안함을 온전히 떨쳐버릴 수 없다는 것 모두 너무나 잘 알기에, 불안해하며 재취업을 준비하는 시간과 불안함을 까먹고 즐거운 일을 하는 시간을 나눠보기로 한다. 어떡하지, 해야할 일 사이의 딴 짓이 너무 즐거워. 얼마 전에는 밴쿠버에서 찍었던 필름 사진을 현상했다. 사람보다는 사람 없는 풍경을 더 좋아하고 바다를 너무 좋아하는 내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서 ..
2020.11.20 -
밴쿠버의 메모들
1. 처음 왔을 땐 그저 답답하게만 느껴지던 주황색 조명이 이제는 따뜻하고 아늑해서 좋다. 확실히 공부나 일할 땐 하얀 조명이 좋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집에서 오래 공부하거나 일할 일이 별로 없어서 집엔 하얀 조명을 잘 안 쓰는 걸까? 저녁 무렵 선셋 비치를 걷다 보면 하나둘씩 켜지는 주황색 불빛이 따스하고 여유로워 보여 좋다. 2. 해외 생활을 하다보면 국내에서 지내는 것보다 압축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잦은 것 같다. 해외에 있기 때문에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게 되는 것보다 (물론 그런 일도 많지만) 국내에서도 겪을 일이지만 국내에서라면 1년에 한 번쯤, 아니면 3년에 한 번쯤 올 일이 일주일마다 몰아치게 되는 것. 어차피 일어날 일이 촉발만 조금 빠른 것이라고 하기엔, 정신을 차릴 틈을 주..
2020.11.07 -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아이는 마치 그랜드 피아노와 같은 것이었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아주 고귀한 소리가 날 것이다. 그 소리를 한번 들어보면 특유의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이다. 너무 매혹된 나머지 그 소리를 알기 이전의 내가 가엾다는 착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어른,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그걸 놓을 충분한 공간이 주어져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집 안에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기 전에 그것을 놓을 각이 나오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부족해도 어떻게든 욱여넣고 살면 살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물론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집이 아니라 피아노 보관소 같은 느낌으로 살면 될 것이다. 그랜드 피아노가 거..
2020.11.06 -
Sechelt, Sunshine Coast (2020)
시쉘트와 선샤인코스트는 난생처음 들어본 곳이었지만, 친구의 친구가 선샤인코스트에 산다는 걸 들었을 때부터 가보고 싶었다. 선샤인코스트는 당연하고 시쉘트라는 이름도 너무 매력적이어서. 큰 계획 없이 큰 준비 없이 꽤 갑작스럽게 가게 됐던 선샤인코스트의 시쉘트는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았고 캐나다에서의 여행 중 가장 아름다웠던 곳으로 남았다. 도착하자마자 바다를 보러 갔는데 날씨와 바다의 색깔과 질감과 분위기와 해변의 몽돌자갈, 그리고 긴 계단을 내려가면 있는 조용한 데크까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밴쿠버에서도 자주 바다를 보러 갔고 빅토리아에 갔을 때도 그랬지만, 그리고 두 곳의 바다도 정말 좋아하지만 시쉘트 바다의 첫인상이 가장 충격적으로 아름다웠고 아마도 이 바다를 정말 많이 그리워할 것 같단 예감이..
2020.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