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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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제목 길다. 원제는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 무대와 연출이 참 신비로웠다. 크리스토퍼가 상상할 땐 나도 같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 배우들이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처럼 유영하듯 움직이는 것을 보는게 정말 기분이 좋았다. 우주가 내려온 듯한 별빛, 별들이 일렁이듯 움직이던 이미지와 움직임. 작은 소품들과 배우들의 움직임으로 세상과 우주를 만들고 수많은 감정과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감탄스러웠다. 흔하지만 뻔하지는 않은, 길지만 지루하지 않은, 담담하지만 찡한, 답답하지만 이해가 가는 이야기에 상상력이 더해지면 이렇게 아름다운 무대가 되는구나. 크리스토퍼의 말투, 몸짓, 태도, 눈빛이 내게 낯설지 않았고, 내가 보지 못했던 그 애들은 어땠을..
2015.12.03 -
연극. 복도에서, 美성년으로 간다
옴니버스 형식의 와 . 는 기승전결이랄 것이 없는 복도의 단상을 보여준다. 상담실 앞 복도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 웃겼고 귀여웠고 안쓰러웠고 어딘지 낯익은 학생들의 대화가 이어진다. 긴 서사가 아니라 한 장면, 그 시절의 파편을 보여주는 연극이어서인지 보면서 내내 내가 겪었던 것들을 떠올렸다.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을 기다리는 불안함 속에서 다른 애들은 무슨 얘기를 했을지 궁금하다. 찌를듯한 예민함과 속을 알 수 없는 변덕스러움, 이기적인 말투, 여기가 어딘지조차 모르겠는 갑갑함.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를 가졌지만 그저 스쳐갈 뿐인 복도. 어디에선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 성격들, 표정들, 대사들. 반갑기도 생경하기도 했다. 분명 내가 느꼈던 그 감정들인데 지금은 우습기도 하고 왜 저래? ..
2015.10.17 -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벗어나지 않고 벗어날 수 없고 그들만의 규칙을 지키며 타인의 접근을 철저히 막는, 부족.남명렬 배우가 연기한 크리스토퍼는 언어를 신봉하지만 소통은 전혀되지 않는 인물이다. 자기는 옳고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는 그 태도. 연상되는 인물이 있어 가장 강렬했고 가장 불편했고 가장 보고 있기 괴로웠(짜증났)다. 빌리와 실비아의 이야기보다도 크리스토퍼와 다른 가족들의 관계에 집중하게 된 것도 아마 그 때문인 것 같다. 무서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꽉 막힌 답답함, 전혀 소통되지 않는 대화들 때문에 너무 무서웠다. 소리는 나고 있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빌리가 소리를 거부하고 수화를 택한 것도 그 때문이겠지만 빌리 역시 실비아와 '대화'하지 못하는 상황에 또다시 암전... 뚜뚜.... 마지막은 ..
2014.11.15 -
연극 <로풍찬 유랑극장>
이 극장은 두 시간으로 줄인 천 만 년을 여섯 평으로 좁힌 억 만 평을 가리고 있다네이 극장의 어둠 속에서 똑똑한 사람은 바보보다 더 바보스러워지고 바보는 똑똑한 사람보다 더 지혜로워진다네이 극장의 어둠 속에서 현해탄은 남대문으로 남대문은 자전거로 자전거는 커다란 돌로 바뀐다네이 극장의 어둠은 황금빛을 푸른빛과 붉은빛으로 나누지 않고 검은빛은 하얀빛으로 푸른빛과 붉은빛을 황금빛으로 모아낸다네극장 안에는 극장 밖에 꺼진 밝은 세상이 있다네 극장 안에는 극장 밖에 꺼진 밝은 세상이 있다네 ... 소를 가죽외투로 곰을 털모자로 돼지를 군화로 만드는 이 세상에서네가 하지 않으면 그 누가 가죽외투가 소의 울음소리를 내도록 털모자가 으르렁거리는 곰이 되도록 군화가 새끼돼지를 낳도록 할 것인가 호랑이를 방석으로 말을..
2014.11.01 -
연극 <프랑켄슈타인>, 인간의 원죄...?
스포일러 주의 인간의 원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던 연극 원죄는 과연 있는가? 인간의 공포심이 원죄일까, 인간의 외로움이 원죄일까, 아니면 '인간'이 원죄일까? 빅터는 공포때문에 피조물을 버렸고, 버려짐으로써 크리처는 첫 번째로 괴물이 되었다. 인간들은 공포에 질려 크리처를 미워하고 때리고 버렸고 크리처는 두 번째로 괴물로 자랐다. 단 한 명, 사랑과 애정으로 그를 품어준 드 라쎄 덕분에 지식뿐 아니라 감정, 감각, 삶을 느껴가고 인간이 되고 싶어했지만 그의 아들과 며느리는 공포로 인해 크리처를 몰아내고 크리처는 한 번 더, 그리고 확실히 괴물이 된다. 드 라쎄의 집에 불을 지르는 크리처의 모습은 분명 섬뜩하고 두려운 괴물이었지만, 동시에 크리처는 여전히 순수했다. 순수해서 오히려 더 지독하게 무서워질수..
2014.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