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

2014. 10. 7. 23:29In the Box



익숙함이 곧 편안함은 아니다. 때론 익숙한 곳에서보다 낯선 곳에서 더 편안함을 느낀다. 낯선 곳에 떨어진 이방인 놀이를 하면서 난 어색함과 외로움보다는 해방감과 묘한 쾌감을 느꼈다. 아무도 날 모른다는 것, 몇 개월 후면 내가 감쪽같이 사라질 거라는 것, 누가 날 잠시 바라봐도 곧 흩어질 잔상일 뿐이라는 것. 결국 시선으로부터의 자유였다. 내가 의식하고 있던 시선들, 실제로 나에게 꽂히던 시선들이 덜어지자 즐거우리만치 가벼워졌다. 몸도 같이 가벼워진다하지만 누구도 날 봐주지 않는다면, 난 존재할까관계성 없는 존재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관계성을 뺀 나머지 존재는 또 어떤 걸까. 요즘 소격효과라는 말이 계속 머리 속에서 맴돈다. 나는 지금 공간과 나를 떼어놓고 바라보고 있는걸까. 그렇게 거리를 두고 보다보면 뭔가 알 수 있을까?

 

낯선 곳, 특히 내가 속하지 않은 어떤 공동체를 밖에서 바라보는 건 꽤 신기한 경험이다. 투명인간인데다 그나마도 곧 사라질 운명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들의 일상을 나는 책을 읽듯이 드라마를 보듯이 지켜보게 된다. 그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어떤 기본적인 감정, 생각, 가치를 제3자의 자리에서 본다. 시한부 이방인이라 그런지 소외감보다는 관찰자의 기분이 든다. 가끔은 투명한 고무공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고무공을 찌르면 물컹한 느낌이 든다.

 

낯선 것은 곧 익숙해진다. 이방인 놀이를 하던 곳에서 점차 어딘가에 속하게 되고, 낯익은 얼굴들이 생겨난다. 일상적인 패턴이 생기고 많은 것을 스쳐간다. 익숙해서 편한 것이 생긴다. 낯설어서 설레던 것들은 조금 시시해진다. 그러다가 문득 익숙했던 것이 낯설다.

 

익숙했던 9월을 보내고 낯선 10월을 맞이하면서 9월 초에 메모해두었더 낯섦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땐 9월이 너무나 생경했는데 지금은 날짜를 쓸때 1부터 쓰는 것이 낯설다. 익숙했던 티스토리 스킨을 조금 고쳤다. 하얀 배경이 익숙해서 바꾸고 싶은데 하얀 배경만큼 익숙하면서도 낯선 배경은 없는 것 같아 그냥 두기로 한다. 익숙한 듯 낯선 스킨이 마음에 든다.


낯섦을 말하다보니 시끌벅적한 친구들 사이로 들어가 밤새 술을 마시고 싶기도 하고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바닥에 주저앉아 지평선을 보고 싶기도 하다. 가본적 없는 우유니가 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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