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2019. 6. 18. 13:48In the Box


17년 1월부터 19년 6월까지 다녔던 회사에서 퇴사를 했다.
인턴을 제외하곤 첫 회사에서 첫 퇴사.
어찌저찌 인턴에서 사원, 대리까지 겨우 달고 나오게 됐다.

실제론 꼬박 2년 6개월이지만 체감상(그리고 노동시간만 따져봐도🙄) 한 5년은 일한 것 같던 곳.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일 위에 일이 쌓이고 감정 위에 감정이 쌓여, 돌이켜보면 당시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기억되는 일도 많다

마지막에 잘해야된다는 건 이런 것 때문이겠지
마지막의 좋은 기억으로 그간의 나쁜 일을 조금이나마 덮을 수 있으니

퇴사 전, 좋아하는 다름 팀 팀장님이 이런 일 저런 일 힘든 일도 많았겠지만, 마지막엔 좋은 기억만 가지고 나가라고 했다. 날 위해서. 그리고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기억될 거라며.

웃기게도, 정말로 그렇게나 괴로웠던 사람도 지내다보니 조금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고, 절대 친해지기 싫었던 사람과도 미운정 고생정 나누며 조금 친해졌다. 뭐, 인정한다. 굳이 헤어지는 마당에 불쾌한 마음 남기고 갈 이유는 없으니

그래도 몇 가지 잊지 않아야 하는 것들은, 미래의 나를 위해.
작정하고 던지는 날카로운 말에 지나치게 상처입지 말 것
열등감과 권위의식으로 다른 이들을 뭉개는 상사는 무시할 것
누군가 처리해줄 것이라고 넘기지 말 것, 내 일은 내 책임
다만, 너무 혼자 끌어안아 무너지도록 견디지는 말기

저렇게 되지는 못해도,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했던 그 사람들의 모습을 꼭 기억하기 잊지 말기


가장 어려웠던 건 내 중심을 잡고 지키는 거였다.
열심히 하는 것 그리고 나를 지키는 것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 그리고 선을 지키고 나를 지키는 것
합리화하지 않기 무뎌지지 않고 날카로울 것 그리고 지나치게 불만만 토해내지 않기 그리고 긍정적으로 재미있게 일 하기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과 명확하고 깔끔한 (다소 냉정한) 업무 스타일 사이 어딘가

쓰면서 생각해보니 나에게 기대한 바가 너무 높긴 했네ㅋㅋㅋ
뭘 이렇게 다 잘하고 싶었을까 싶고.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이 회사에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와 잘 맞는 사람, 나를 아주 좋게 봐주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람들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
내가 잘 한 덕도 있겠지만, 행운이었다 정말로
대학 때를 생각해보면, 많이 어설픈 나와 운 나쁘게 틀어진 사람들, 그리고 조금 많이 못된 인간들까지. 🤮
여기선 운도 좋았고 좋은 사람들도 많았지.
다시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같이 일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조금 망설여질 정도로.

하지만 좋은 사람들 이미 절반도 넘게 나가버렸고,
나도 할만큼 했으니 떠나야 할 때

다른 곳에서도 내가 이렇게 해보자고 다짐해본다, 또다른 행운도 조금 기대해보고.



퇴사한 날까지도 퇴근 시간 넘어까지 회의를 하질 않나 이상한 면담을 하질 않나, 이래저래 짜증 잔뜩 안고 마지막 퇴근을 했다.

집에 와서 부모님과 축하의 맥주 쨘을 하고 밤엔 퇴근한 애인과 와인을 쨘했다.
사실 나는 이날 좀 울고 싶었던 터라, 술기운과 애인을 핑계삼아 조금 엉엉 울었다.
그동안 내가 했던 개고생, 굳이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아도 되었을 일들도 생각나고, 다시 만나기 어려울 한 시절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과 드디어 끝났다는 서러운 후련함 그리고 내일에 대한 약간의 불안함 뭐 이런 것들을 떠올리며.


정말로 고생했던 나,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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