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9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 내가 좋아하는 것들

2019. 11. 29. 21:57In the Box

1. 구글의 플래시 지원이 거의 끝나가면서 거의 대부분의 사이트에서 플래시를 이용할 수 없다. 문제는 티스토리의 임시저장이 플래시 기능을 이용한다는건데 내가 이것때문에 치노 주접글을 날렸었지... 글을 쓸 때마다 사이트 허용 한번만 허용을 눌러야 하는 점이 아주 귀찮다. 티스토리는 이거 어떻게 할건지 안 정했나. 당장 한달하고도 며칠만 지나면 2020년인데 어쩔건데 이거.... (2019.12.09 내가 업데이트를 안 한 탓에, 옛날 에디터를 이요하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ㅎㅎㅎㅎㅎ)

2. 오늘은 좋아하는 친구 G를 만났다. G와 만나면 항상 대화가 즐겁고 배울게 많아서 좋아. G가 최근 겪고 있는 조직 내에서의 어려움과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여러 고민들은 항상 나를 긴장시킨다. 나이브해지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도 들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G처럼 얘기하거나 행동할 수 있었을지. 생각보다 나는 회사에서 무기력했고 나이브했고 적당히 넘겼던 일들이 많았던 것 같아 조금 괴롭기도 하다. 항상 잘 해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늘 생각해야 한다. 항상 옳은 방향으로 갈 수는 없어도 적어도 그 방향을 계속 인지는 하고, 방향키를 돌려보려고 노력 해야지.

 

3.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다.

한 달 사이에 두 명의 여성 연예인이 자살했다. 다른 사람이 그랬듯, 나는 이게 자살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첫 번째에는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고 며칠을 울었다. 애도의 글도 적을 수 없었다. 대체 그런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당당하고 강해보였어도 사람인데 항상 그걸 버틸 수 있을리가 없었다. 같은 시대를 사는 여성으로 설리에게 진 빚이 많았다. 그가 기사와 댓글로 돌을 맞으면서도 해준 말들이 많은 힘이 되었다. 좋아했지만, 좋아한다고 표현한 적이 별로 없었다는게 너무 끔찍했다. 나는 그사람의 글 하나에 용기를 얻고 자부심을 느끼고 연대를 느꼈는데 설리는 너무 고통스러웠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돼. 한달만에 떠난 하라의 소식에는 참담함을 떠나 뭐랄까, 그냥 아예 생각도 마음도 붕 뜬 것 같았다. 대체, 이게, 뭐냐고. 최종범은 무죄를 받고, 피해자의 이름만 내내 기사에 오르내리고 판사는 피해자를 앞에두고 영상을 보자고 하고. 그럼에도 잘 버텨주기를 바랐다. 나는 모르겠다. 그렇게 사는게 죽는것만큼 끔찍했겠지만 그래도 죽지 않기를 바랐는데. 어릴 때부터 보았고 같은 시대를 자랐던 여자들이 자꾸 죽는다. 죽는 이유를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너무 괴롭고 화가 나. 가해자는 한둘이 아니다. 줄줄이 읊을 수도 있다. 대체 전남친이라는 개새끼들은 여기서 지들이 가해자가 아닐거라고 생각하는지 자꾸 말을 얹고 오덕식 판사와 최종범은 살인죄를 물어야 돼 진짜. 최근 수많은 여성 상대 범죄 재판에서 수많은 여성혐오 판결이 나고 있다. 피해자를 탓하고 가해자를 동정하고 법리를 남자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대체 어떻게 살아가란 말이지. 그냥 다 죽으라고 죽으라고 온 나라가 굿을 하는 것만 같다.

그래도 어쨌든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는 거다.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닿지 않을지라도 계속 이야기하고 계속 화를 내고 시위를 하고, 죽지 말고 어쩌면 일을 계속 하게 된다면 더 어린 여성들을 위해 자리를 만들어두고.

그러면서도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이 나라를 그냥 떠나고 싶다. 온전히 떨쳐낼 수야 없겠지만 최소한 이 땅을 떠나 살고 싶다. 가끔은 정말로, 내가 짓눌려 죽을 것 같아서. 

 

4. 사실 G와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 한 건 아니고, 회사 얘기랑 어떻게 살아야 할지랑 뭐 여러가지 얘기를 했는데 전부 다 기억이 나지는 않네. 한 네시간 넘게 떠든 것 같다. 캐나다 가는 거 너무 좋은 기회라고, 그렇게 중요한 시기에 전환점이 되는 일을 하는 건 정말 좋은 거라고 응원해줘서 고마웠다. 난 항상 내 선택에 강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편인데 (그래도 내 선택대로 하지만, 약간은 불안해하면서 하는 편인 것 같음) 내 선택에 공감하고 그게 맞다고 해주는 사람들에게 고맙고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주면 더 힘이 난다. 

 

5. 생각을 외주 주지 말자는 이야기도 했다. 사실 조금 뜨끔한 이야기인데, 나도 요즘은 내 생각을 정리하고 쓰기보다는 남들이 정리해서 말한 내용에 공감하기만 하는 경우가 많아서. 생각을 외주 주다보면, 자기 생각을 잃는다. 어떤 생각과 의견도 100% 같을 수는 없는 법이고 비슷한 방향의 생각들도 사실은 디테일이 다르고, 그 디테일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기도 하다. 자꾸자꾸 뇌를 돌려야되는데 외주 주면 편하니까 뇌를 그냥 놀리는 거다. 계속 쓰고 말해야, 생각도 하더라. 그래서 자꾸자꾸 쓰려고 해본다.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진짜 내 뇌를 잃지는 말아야지.

 

6. 투명하게 말하기. 정치질 싫지만, 정치질과 투명하게 말하는 것이 상반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정치는 정치고 투명하게 말하면서도 그게 가능한 것 같아. G처럼. 돈을 벌면서도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절대 양립할 수 없을 것처럼 사람들이 말하고 또 믿는 어떤 것들은 사실 같이 갈 수 있다. 그게 제일 어려운 방법이라 생각하기를 포기해서 그렇지, 분명 길은 있을 거라고 생각해. 

 

7. 영상을 조금씩 찍어서 만들어볼까 하고 프리미어도 깔았다. 고프로로 영상을 찍는게 너무 어색하지만.... 그래도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기획해서 찍는 게 아니다보니까 일단은 파편 파편을 찍고 있는데 G가 분절된 영상에 내 일기를 쓰는 방식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해줬다. 이미지와 내용이 꼭 딱딱 다 맞을 필요는 없으니깐. 물론, 내 기록용으로서 더 의미가 있겠지만 - 일기도 그렇듯 실제 본 이미지와 감상은 다른 법이다. 그런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남들도 재미있을 걸 만들면 가장 좋겠지만, 일단은.

 

8. 어제는 H언니를 만났는데 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콘텐츠를 다시 만들고 싶은건지 요즘 콘텐츠가 또 너무 좋다. 읽고 보고 분석해보고 쓰고 싶고. 그치만 그러면서 나는 배타적인 연인간의 사랑 이야기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재미있는 사랑 이야기는 뭐 재미있긴 하지만, 그건 이야기의 힘이지 사랑의 힘은 아니고 특히 로맨스에 집중된 이야기는 별로 흥미가 안 생긴다. 언니는 그런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고 언니의 글은 대부분 사랑(아니면 분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라 나는 그게 너무 신기했다. 한때는 따라하고 싶기도 했지만, 나와 다르다는 걸 이제서야 어렴풋이 알게 된 기분이야. 

 

9.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뭘 쓰고 싶은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서른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잘 모르겠고 지금도 계속 생각한다. 그런데 예전에는 도통 모르겠더니 요즘은 좀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닮고 싶은 사람의 취향을 좇는 경향은 솔직히 아직도 좀 있지만, 그래도 내 거를 조금씩 늘려가고 싶어. 어쩌면 서른 정도 되면 내 걸 가지고 싶은지도 몰라.

 

10. 좋아하는 것들,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을 가만히 떠올려 보자. 

가끔 명상처럼, 숙제처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기분이 좋아지고 뭔가 명확해지는 기분이 들어 좋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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