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4 2019년의 마지막 달

2019. 12. 4. 23:40In the Box

벌써 12월이라니. 시간은 정말로 기어코 가고야 만다. 나이에 연연하지 않아야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이십대의 마지막 달이라는 게 괜히 계속 아른거린다. 나의 이십대는 어땠는지, 나의 삼십대는 어떨지. 별 거 아닌 구분선이지만 그렇게 돌이켜보게 되고 그렇게 기대하게 된다. 

나의 이십대에 수식어를 붙인다면 우당탕탕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새 세상에 나오느라고 별일이 다 있었고 나도 나를 모르고 괴로워하는 일이 많았고 (사실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상처를 많이 받았고 벽을 많이 세웠고 나에게도 많이 실망했던 날들이 많았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살고 있구나, 싶었던 행복한 날들도 많았다. 눈에서 빛이 튀어나왔을 그 며칠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기억이 선명히 남지는 않았네. 대개 뭔가를 누군가와 즐겁게 할 때 가장 행복했다. 다시 오지 않을 일이라는 걸 그때도 알았던 것 같은데, 그래서 나는 너무 행복하면 약간 눈물이 났다. 

즐거웠던 기억이 이렇게도 흐릿하다니 좀 아쉽다. 그때 열심히 적어뒀어야 했는데, 요즘은 후회만 한다. 이십대 초반엔 사실 뭘 해도 뭘 봐도 즐거웠고, 그래서 어느날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은 내가 너무 속상했다. 이십대 중반의 어느날 회사를 다니던 때에 친한 언니 앞에서 속내를 털어놓았다. 내가 약간 죽은 것 같다고. 팔딱거리듯 행복했던 기억은 있는데 더이상 그렇게 행복하지를 않아서 내 어딘가가 죽어버린 것 같다고. 나보다 세 살이 많은 언니는 나한테 너도 늙었다고 했다. 지금은 내 한탄을 들어줬던 그 언니보다 내가 나이가 더 많지만, 나는 그게 지금도 아쉽고 속상하다. 여전히 눈에서 빛을 내는 사람들이 사랑스럽고 부럽다.

그래서 이십대에 프리다이빙을 만난 게 내겐 너무 큰 고마움이다. 몸을 드러내는 일이 너무 싫어서 망설였는데, 그때 내 등을 떠밀고 내 손을 끌어당겨준 사람들에게 내내 고마울 거야. 바다를 더 사랑하게 됐고 새로운 세상으로 내려가는 일이 너무 행복했다. 혼자 갔던 보홀도 다같이 갔던 보홀도 셋이 갔던 모알보알도 정말로 잊지 못할 거야. 바다와 맥주, 뜨끈한 공기와 별들. 

행복을 주는 일들을 지속하기란 생각보다도 더 어려운 것 같다. 프리다이빙은 돈이 너무 많이 들고, 함께 할 사람들이 필요하고, 타이밍도 중요하다. 관계는 바뀌고 상황도 바뀌고 사람들도 변한다. 마음이 가장 쉽게 바뀌고 떠나고 변한다. 불이 막 붙었을 때 마구 지폈던 터라 아직까진 그 불이 꺼지지 않았는데, 앞으로도 꺼트리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하면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지를 고민해본다. 사실 뭐, 정해진 답은 돈이겠지만, 그것과 다른 결의 것들 어쩌면 그 이상의 것들.

그래도 요즘은 일상을 지속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당장 나는 일상을 떠날 예정이지만, 삼십대의 나는 나를 조금 더 잘 알고 내 방식을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곳에서는 나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익숙한 삶에 치이는 삶이 아닐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난 주로 연말과 봄에 센치해지는데, 글을 쓰니 또 깨닫고야 만다. 아이고, 연말이구나. 특별한 의미따위 부여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늘 그렇게 되곤 한다. 떼껄룩이 선곡해준 크리스마스 노래를 들으면서 조금 이른 2019년 돌아보기 감상을 썼다. 개같은 한 해 였지만 그중에서도 즐거운 일은 있었고, 다 지나고 말랑따끈한 노래와 함께 돌아보니 또 나름 괜찮았던 것 같은 추억 필터가 씌워진다. 그래도 이렇게도 좆같은 일은 다신 없었으면 좋겠다.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기원과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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