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 고객사 계약이 종료되어

2018. 12. 21. 10:52In the Box

0. 담당 고객사 계약이 종료되어, 회사에서 딱히 할 일이 없는 자가 쓰는 글. 

 
1. 주제도 없고 딱히 하고 싶은 얘기도 떠오르지 않지만, 오랜만에 그냥 줄줄 적어본다. 한참을 트위터로 딴 짓도 하고, 내년도 기획안도 읽어보고 트렌드리포트도 좀 찾아보다가 조금 지겨워져서. 
 
2. 흰 바닥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규격에 맞는 블로그 글만 쓰느라 늘 서식을 복붙해서 글을 쓰곤 했다. 늘 같은 서식의 비슷한 느낌의 글을 아래에 깔고 쓰기 시작하는 글과 흰 바닥을 보며 쓰기 시작하는 글은 다르지. 다르겠지. 
 
3. 흰 바닥을 무서워했던 적이 있다. 스물 셋, 대외활동을 하며 책자를 만들 때. 짤막한 옐로 페이지용 원고도 썼고, 대외활동에 참여하는 그 당시의 고객사(…) 소개글도 썼고, 우리의 이야기도 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글을 쓴 건지도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는데, 나는 스물 셋 봄, 새벽녘 모니터 앞에서 흰 워드프로세서 바탕을 켜고 눈물만 줄줄 흘렸다. 글을 쓰다 보니 떠오르는 기억은 왠지 지금의 내 모습과 닮아있다. 마감은 가깝고, 그 당시의 고객사에게서 정보는 넘어오지 않고, 일정이 빠듯하니 나는 당연하게 밤을 새야했고, 무급이었고, 나는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가, 왜 시작했지, 왜 괴로울까, 왜 쓰지 못할까 – 하며 괴로워했던 것 같다. 
 
4. 그리고 한동안 글을 안 썼던 것 같다. 지겹고 무서웠던 흰 바닥. 
 
5. 흰 바닥에 글을 쓴 것은 그 후로도 몇 번 있었다. 즐겁게 시작했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해 닫은 것이 가장 많다. 지금도 오랜만에 줄줄 글을 쓰고 있으니 조금 즐겁다. 평가 받지 않을 글이니까. 
 
6. 사실, 모든 글은 평가를 받지. 나는 그 평가를 좀 신경 쓰는 편이다. 인스타그램에 한 줄 올릴 때도 꽤 글을 잘 쓰는 사람인 척 하고 싶어서 고심하고, 그래서 그냥 싹 지우고 개소리를 왈왈 쓰고 올리기도 하고 이모티콘으로 때우기도 한다. 그래서 그동안 글을 못 올렸던 것이 아닐까. 그냥 개소리 왈왈 이어도 괜찮을텐데, 평가 받는다는 기분에. 
 
7. 잘 하고 싶다, 는 마음은 나쁜 게 아니겠지. 하지만 종종 그 마음이 나를 움츠러들게 한다. 나도 만족시켜야 하고 평가도 잘 받았으면 좋겠다. 글을 쓰는 일 말고도 언제나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의 기준이 너무 많아서 나는 좀 힘들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없다는 것, 잘 알지만 그래도 그게 잘 안 돼. 
 
8. 사실 머리를 쓰기 싫어서, 게을러서 글을 안 썼던 것도 있다. 주제를 잡고 가닥을 정리하고 기승전결이 있는 글을 쓰려면 품이 많이 드니깐. 
 
9. 자고 있는 치노를 보면서 쓴 취중 사랑 고백 같은 글도 쓰다 말아 보관함에 있기는 한데…. 
 
10. 뭐 어쨌든 그렇다. 오랜만에 주절주절 생각을 내뱉고 있으니 즐겁다. 블로그를 좋아했던 이유는 이런 글을 마구마구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어. 
 
11. 이 글은 블로그에 올려야겠다. 브런치에도 글을 올리고 싶은데, 아무래도 잘 쓴 글을 올려두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자꾸 망설이게 되니까. 
 
12. 생각해보니 올해 여행을 좀 많이 다녀왔으니까, 여행 글도 써야겠다. 
 
13. 오랜만에 들어온 블로그, 많이들 네이버로 돌아갔고 브런치로 떠나갔다. 아직 티스토리를 쓰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독자가 있는 브런치와 네이버로 가야할까 싶기도 해. 
 
14. 하지만 이 많은 자료들을 언제 옮긴담 
 
14-2. 앗 하지만 오랜만에 티스토리에 남아있는 친구의 글을 보았고 난 역시 티스토리에 있을래 
 
15. 오랜만에 들어오니, 그동안 그래도 열심히 글을 써보려고 했던 것 같다. 여행 글도 있고 뮤지컬 글도 많네. 
 
16. 글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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