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집

2015. 9. 18. 21:36In the Box



한 달 여행과 함께 계획했던 올해 최대의 프로젝트 또 한번의 여행. 부모님 결혼 25주년 기념 여행에 내가 가이드로 함께 가는 가족여행이었다. 군 생활 중인 동생은 가지 못해 완전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거의 십 년만의 가족여행. 


내 여행을 결심하고 얼마 안 되어서, 엄마 아빠가 일생 일대의 결정을 내렸고 나는 아주 재빠르게 비행기를 예매했다. 아빠 일 때문에 취소 가능한 티켓을 알아보기는 했지만 사생결단, 죽어도 간다- 는 마음가짐으로 아빠는 비행기 티켓을 결제했던 것 같다. 이렇게 안 했다면 여행에서도 빵빵 문제가 터졌던 프로젝트 때문에 아빠는 아마 못 갔을 것이다. 나는 하반기를 냅다 차버리고 엄마는 대장의 책임을 조금씩 나누어 두고 아빠는 사생결단으로, 꽤나 파격적으로 우리는 떠날 준비를 했다.


실은 내 여행 계획을 짜면서 같이 모두 준비해두려고 했지만 나 홀로 떠나는 여행 준비도 그리 녹록지는 않아서 여행을 다녀오고 푹 몸을 풀고서야 허둥지둥 인-아웃만 덜렁 남겨둔 계획지를 채우기 시작했다. 티켓 살 때는 큰 고민없이 여행지를 정했다. 내 여행지가 아니었던 크로아티아, 그리고 근처에 갈 만한...음, 이탈리아? 내가 남부를 안 가니까 부모님이랑 남부를 가면 되겠다!


그리고 한 달 여행을 다녀와 급히 예약을 하고 계획을 짰다. 혼자 다녀와보니 별 걱정은 안 되었지만 엄마랑 간다는 게 많이 부담이 됐다. 도미토리는 좀 힘들거고, 호텔은 예산이 안 되고, 빡세게 이동도 안 되고 너무 오래 걸어도 안 되고 너무 힘들어도 안 되고.... 그런데 또 여행 계획을 짜다보니 여기도 저기도 같이 가보고는 싶고. 욕심을 버리고 애초 여행의 목적과 현실과 적당히 협상하며 계획을 만들었다. 덕분에 예산 폭발의 주범이자 이동이 지나치게 까다로울 것 같은 이탈리아 남부는 취소. 내내 속이 쓰렸지만 험난했던 나폴리를 다녀온 지금 생각하면, 최선은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결론적으로, 가 아니라 그 과정 시간 모두를 생각해보았을 때도 여행은 꽤 성공적이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크로아티아는 기대 이상, 200%의 성공. 이탈리아는 절반 이하의 성공. 물론 그 속에서도 우린 나름의 재미를 찾았고 아마 오래오래 추억할 기억이니까 실패라고 할 순 없지만 가이드로서 이태리는 참 아쉬운 여행지였다. 혼자는 다시 가도 엄마랑은 다시 안 갈.



혼자 와서 할 수 있었던 것들, 혼자 다녀서 좋았던 것들은 할 수 없었고 느끼기 어려웠지만 혼자일 땐 할 수 없던 것들 느낄 수 없던 것들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여행이었다. 우린 매일 맥주를 마셨고 매일 하루에 대해 얘기했고 매일 같이 있었다. 떠나기 직전에 두려웠던 것들을 마주했고 생각보다는 잘 해결했다. 이해가 되기도 하고 여전히 이해할 수 없기도 하지만, 함께 떠나와 함께 이런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살짝 감격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또 갑자기 돌아온 것 같은 한국. 이전 여행의 사진을 정리하기도 전에 또 왕창 사진을 안고 돌아왔다. 성질 급한 아빠 속도 맞추려면 작업처럼 사진을 정리해야 할 것 같다. 

다시 내 앞에 놓인 시간들을 어떻게 해야할 지도 고민을 해야 한다. 그 공기 그 바다들을 생각하면서 잘 지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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