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프랑켄슈타인>, 인간의 원죄...?

2014. 10. 29. 00:27Like/Play

스포일러 주의




인간의 원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던 연극 <프랑켄슈타인> 원죄는 과연 있는가

인간의 공포심이 원죄일까, 인간의 외로움이 원죄일까, 아니면 '인간'이 원죄일까?

 

빅터는 공포때문에 피조물을 버렸고, 버려짐으로써 크리처는 첫 번째로 괴물이 되었다. 인간들은 공포에 질려 크리처를 미워하고 때리고 버렸고 크리처는 두 번째로 괴물로 자랐다단 한 명, 사랑과 애정으로 그를 품어준 드 라쎄 덕분에 지식뿐 아니라 감정, 감각, 삶을 느껴가고 인간이 되고 싶어했지만 그의 아들과 며느리는 공포로 인해 크리처를 몰아내고 크리처는 한 번 더, 그리고 확실히 괴물이 된다. 드 라쎄의 집에 불을 지르는 크리처의 모습은 분명 섬뜩하고 두려운 괴물이었지만, 동시에 크리처는 여전히 순수했다. 순수해서 오히려 더 지독하게 무서워질수 있는 모습으로 그는 울부짖었다. 생애 처음으로 움직이는 생명체, 새를 보면서 기뻐하고 눈을 보며 강아지처럼 즐거워하던 크리처는 세 번에 걸쳐 괴물로 빚어졌다

 

인간은 날 받아줄 수 없어, 괴물은 외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는 그의 창조주,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찾아간다. 버려진 것에 대한 복수, 외로움에 대한 절규로 크리처는 빅터의 동생을 죽이고 그에게 명령한다. 나와 같은 존재를, 나의 반려를 만들어라, 이 외로움을 함께 이겨낼 수 있는 나의 짝을 만들어라. 그렇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크리처의 외로움은 또 한번의 생명창조를 부추겼지만 빅터는 생명을 잇기 전, 창조를 포기한다. 다시는 이런 괴물을 만들지 않겠노라고. 크리처는 또 한 번 버려지고, 마지막으로 괴물이 된다.

 

그리고 그는 그를 두고 달아난 빅터에게 크리처는 그의 방식대로, 그리고 인간의 방식을 이용해 복수한다. 여전히 순수하고 올곧게, 그러나 때론 인간의 거짓말을 이용하면서. 결국 크리처는 빅터의 모든 것을 빼앗는다. 끝에 다다랐을때 크리처는 처음으로 온전히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지만(드 라쎄마저도 완전히 하지 못했던 일이미 너무나 외로워서,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까지 달려왔기에 크리처는 그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빅터의 생명창조 실험. 하지만 실은 빅터가 크리처를 만들어 낸 것 역시 그의 외로움 때문이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다가 자신의 생명은 살리지 못하고 죽어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외로움이 빅터를 생명창조 실험으로 이끌었다. 인간의 외로움은 결국 비극을 낳았는가, 인간의 외로움이 원죄인가어쩌면 극이 인간의 원죄, 인간이 원죄라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장면은 사실 잘 이해가 안 간다. 다만 크리처가 빅터를 되살리고 인간의 무력함을 비웃으면서 그를 바라보는(내려다보는?) 모습을 보자, 극을 보던 중 처음으로 빅터에게 감정이입을 했고 크리처가 너무나도 끔찍하고 섬뜩하게 느껴졌다. 인간은 내려다볼 수는 있어도 내려보아지는 것은 참을 수 없는걸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드 라쎄가 눈이 멀지 않았다면 그는 크리처를 받아줄 수 있었을까? '보는 것'에 대한 한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인간은 보기 때문에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크리처를 보았던 건 장님인 드 라쎄와 엘리자베스뿐이었다드 라쎄는 장님이었고 엘리자베스는 유일하게 온전히 ''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크리처의 창조주이자 원수인 빅터만을 바라보고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엘리자베스는 크리처가 아니라 크리처를 통해 빅터를 보고, 빅터의 모습을 투영해 크리처를 보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아이러니하게도 크리처를 제대로 보아준 사람은 볼 수 없는 사람과 그의 원수를 보는 사람, 둘 뿐이었다. 결국 아무도 크리처를 보아주지 않았고 다른 이들은 보는 것 때문에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크리처를 괴물로 만들었다.

 

 

박해수 배우의 끔찍하리만치 완벽한(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감히.) 연기 하나만으로도 긴 러닝타임이 충분히 보상받는 느낌. 순수한 아이같은 모습도 끔찍한 괴물의 모습도, 순수하면서 끔찍한 크리처의 모습도 너무나 완벽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 어떻게 이렇게 연기할 수 있지? 하고 극 보는 내내 감탄했다. 


극 전체적으로는 조금 어렵기도 하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많았고 빅터의 역할과 비중이 아쉬웠다연출 탓인지 배우 탓인지, 둘 다 인지 잘 모르겠다. (둘 다 인 듯)


어쨌든 박해수 배우의 순수하고, 끔찍하고, 충격적인 연기만으로도 충분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ddd 마지막 장면 미장센도 좋았다. 조연 배우들도 연기가 대체로 좋았다....고 도매가로 넘기기에는 정영주 배우도 훌륭했고 엘리자베스의 전경수 배우도 멋졌다.


동시에 NT 프랑켄슈타인에서 오이가 어떻게 크리처를 연기할지가 궁금해져서 표를 잡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괴물 박해수

빅터 프랑켄슈타인 이율

드 라쎄/마담 프랑켄슈타인 정영주

클라리스/그레텔 박지아

엘리자베스 라벤자 전경수

펠릭스 장한얼

아가사/여성 피조물 황선화

클라우스/이안 안창환

구스타프 외 정승준

래브 외 이민재

알리나 프랑켄슈타인 박도연

시민/하녀 조민정

 

연출 조광화

작 닉 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