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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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처럼 살지 마라 / 박노해
넌 나처럼 살지 마라 / 박노해 아버지,술 한 잔 걸치신 날이면넌 나처럼 살지 마라 어머니,파스 냄새 물신한 귀갓길에넌 나처럼 살지 마라 이 악물고 공부해라좋은 사무실 취직해라악착같이 돈 벌어라 악하지도 못한 당신께서 악도 남지 않은 휘청이는 몸으로넌 나처럼 살지 마라 울먹이는 밤 내 가슴에 슬픔의 칼이 돋아날 때나도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요스무 살이 되어서도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꿈을 찾는게 꿈이어서 억울하고 어머니, 당신의 소망은 이미 죽었어요아버지, 이젠 대학 나와도 내 손으로당신이 꿈꾸는 밥을 벌 수 없어요 넌 나처럼 살지 마라, 그래요,난 절대로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예요자식이 부모조차 존경할 수 없는 세상을제 새끼에게 나처럼 살지 말라고 말하는 세상을난 결코 살아남지 않을 거예요 아..
2015.01.29 -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라는 이름의 학교에서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여름에도 겨울에도낙제는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하루도 없다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과 같았다 오늘은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을 무엇 때문에 너는쓸데 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너는 사라진..
2014.11.15 -
여승(女僧) / 백석
여승(女僧) / 백석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가지취의 냄새가 났다.쓸쓸한 낯이 녯날같이 늙었다.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늬 산(山) 깊은 금덤판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여인(女人)은 나 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 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_백석《사슴》(1936) 수능이 끝난 해 겨울 어느 날 처음으로 시를 보고 울었다. 언어영역을 좋아했지만 단 한 번도 이 시를 보고 눈물이 난 적은 없었는데 수능이라는 속박이 ..
2014.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