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돼가? 무엇이든> 이경미

2019. 7. 16. 13:49Like

<잘 돼가? 무엇이든, 이경미>

– 나는 나를 믿는 일이 제일 어렵다. 어쨌든. 아주 조금씩 가고 있다

 

이경미 감독을 처음 안 것은 영화 <미스홍당무> 덕분이었다. 공효진이 주인공이라서 별 생각 없이 봤던 영화는 특이했고, 별난 사람들의 이상한 이야기지만 웃기게도 무척 공감하며 재미있게 봤었다. 이경미 감독은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를 독특하게 그려내는 감독이었다. 그래서 이경미 감독의 이름을 기억했고 다음 영화인 <비밀은 없다>도 챙겨보았다. 역시 다소 독특했지만, 그래서 좋았다. 평범한 이야기를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틀어서 보여주는 감독이었다. 한국 영화계에 꼭 필요한, 더 많아져야 할 독특함과 이상함, 낯섦을 지닌 감독이었다. 

 

<잘 돼가? 무엇이든>는 이경미 감독의 일기를 엮어 낸 그의 첫번째 에세이집이다. 보편적인 이야기였지만 감독의 영화만큼이나 독특하고 흡입력 있는 이야기들. 영화 <비밀은 없다>가 망할 뻔 했지만, 영화팬들의 부흥 운동 덕분에 간신히 다시 극장에 걸렸고, 그해 꽤 많은 상을 받았다던 이야기. 아르바이트를 가다가 영화팬들이 써준 리뷰를 보며 울었다는 이야기. 헤어진 전 남자친구의 미니홈피, 전 남자친구의 현 여자친구의 미니홈피까지 들어가보곤 했다던 감독의 길티 플레져 이야기. 밤에 잠 못 이루던 감독을 걱정하던 어머니가 밤마다, 지금까지 매일 편안한 밤 보내라며 보내주는 문자 이야기. 덤덤한 문장에 담긴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상황에서 느꼈던 감독의 감정들이 마음에 쿡쿡 박히는 기분이다. 그의 일기를 따라 웃다가, 울다가, 화를 내다가 또 웃고 만다. 에세이는 문장력이 훌륭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글은 진심인가보다. 

 

이경미 감독의 영화는 다소 ‘또라이’같은 면이 있는데, 나는 그 포인트를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잘 돼가? 무엇이든> 역시 이런 ‘또라이’ 기질이 살아있는 에세이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이라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었구나, 싶었다. 이경미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를 많이 만들었는데, 에세이에서 영화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엿볼 수 있었다. <미쓰 홍당무>는 남몰래 짝사랑하던 유부남이 젊은 여자랑 바람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쓴 영화란다. 실패한 자신에게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비밀은 없다>는 자신처럼 이기적인 사람도 모성애가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한다. 작은 고민, 스쳐갈 법도 한 사건에서 이야기를 뽑아내는 재능에 감탄했고, 이경미 감독이 스토리를 풀어내가는 방식에 반했으니 앞으로의 영화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이경미 감독은 담담하고 다소 거친 말투로 에세이를 이어간다. 그 말들이 정제된 어떤 예쁜 문장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에세이는 이렇게 끝이 난다. ‘나는 나를 믿는 일이 제일 어렵다. 어쨌든. 아주 조금씩 가고 있다.’ 잘 돼가? 무엇이든 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 어쨌든, 아주 조금씩이라도 잘 돼가고 있다. 감독이 그랬듯, 책을 읽는 나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겠지. 나도 나를 믿는 일이 가장 어렵지만 그렇게 조금씩 가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201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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