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술> 김혼비

2019. 7. 16. 14:02Like

<아무튼 술>

 

초여름 술 친구와 함께 연남동에서, 일품진로 각 일 병을 마신 날의 풍경


아무튼 좋은 것, 딱 한 가지에 대해 쓰는 에세이 시리즈,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한다. 특히 <아무튼 술>은 출간 전부터 기대가 됐다. 술 좋아하는 사람이 쓰는 술 이야기를 술 좋아하는 내가 놓칠 순 없었으니까. 

 

이 책은 꼭 술 한 잔 하면서 읽어야지, 생각했기에 청주 한 병과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무튼 술>은 대단한 술 추천이나 술과 함께하는 여행, 혹은 안주 추천 같은 글은 아니다. 술을 너무 사랑하는 작가의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책이었는데 첫 장을 읽으면서부터 허벅지를 때리며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옆에 있던 친구에게 너무 웃긴 에피소드를 읽어주며 이 즐거움을 나누고 싶을 정도로. 최근 만난 작가 중 가장 맛깔나게 글을 쓰는 작가였고, 나는 김혼비 작가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렇게 깔깔 웃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조금 울컥했는데 작가가 유난히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날의 에피소드도 어김없이 너무 웃겼는데, 웃다가 웃다가 마음이 풀어져서 눈물이 나고 엉엉 울고 그리고 조금 힘이 나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마음이 풀어지고 힘을 얻는 경험을 나도 해본 적이 있어서 마음이 찡 했다.

 


어쩐지 나는 좀 힘을 내기 시작했다. 당장에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무너지기 직전의 다리를 가까스로 건너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힘내라는 말과 그 비슷한 종류의 말들을 더이상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아무런 힘이 없어 누군가의 귀에 가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툭 떨어지는 말일지라도, 때로는 해야만 하는 말이 있다.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쉬운 말밖에 없을지라도, 이런 쉬운 말이라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언젠가 가닿기를, 언젠가 쉬워지기를 바라는 누군가의 소망이 단단하게 박제된 말은 세상에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바닥에라도 굴러다니고 있으면 나중에 필요한 순간 주워 담아갈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우리는 힘을 내야 하니까. 살아가려면. (61-62.p)


 

‘힘내’라는 말이 얼마나 무력한 지 알기에 나도 그 말을 잘 꺼내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그런 말들이 누군가에게 언젠가 주워 담을 수도 있는, 뜻밖의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내게도 뜻밖의 위로로 다가왔다.


옆에서 보기엔 좀 이상해보였을 것 같다. 숨 넘어가게 웃다가,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책장을 넘기는 모습이라니. 심지어 술을 마시면서. 좀 취해보이지 않았을까? 그래도 술 한잔과 읽어서 다행이었다. 더 즐겁게 읽었고 더 재미있게 마셨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좋은 사람과 술 마시는 기분이 또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