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헤드윅>, 모든 공존할 수 없을 것이라 믿었던 것들의 경계선

2014. 8. 5. 02:26Like/Play


  • 손드윅, 조드윅, 그리고 얼마 전 심야의 웅드윅

  • 헤드윅은 참 기 (쭉쭉) 빨리는 극. 내가 온전히 이해를 한 건지 아닌지, 제대로 보고 있던 게 맞는지 아닌지 머리가 팽팽팽 돈다. 어쩌다보니 세 번이나 봤는데도....  허허.

  • 손승원의 헤드윅은 (별 정보없이 헤뒥을 처음 만난 나같은) 관객만큼 배우도 스토리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음.. 뭐 스토리를 따라가기는 했지만 큰 울림이나 여운은 없었던 기억. 소문만큼 충격과 공포 정도는 아니었지만..  여튼 헤드윅 '이야기'는 잘 들었다, 정도.

  • 조승우의 헤드윅은, 티켓팅 얘기를 안할수가 없쟈나. 아 티켓팅 진짜 힘들었다ㅠㅠㅠㅠ 보통 티켓팅에 그닥 목숨걸지 않는 편이라 그간 이렇게 멘탈 털린 기억은 별로 없는데 아주 그냥 하루종일 탈탈 털려서 멍..... 결국 난 못잡았다. 날 데려간 친구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 뭐 그건 그렇고. 조드윅은 티켓팅만큼이나 멘붕. 사실 내가 본 날, 좀 정신없었다. 초장부터 무대에 드러누워서 스피커에 다리 올리고 뒤집어져서 대사를 치던 조드윅ㅎㅎㅎ 그리고 워낙 유명한 배우다보니(신의 선물도 열심히봤고...) "조승우다!!!!!"라는 생각이 안들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대사를 치고 연기를 한다기보단, 스스로의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이 강해서 저게 연륜인가 했다.
  • 산만하고 정신없고 진짜 미쳤나;;; 싶던 헤드윅은 인생얘기를 해주고 노래를 하다가 순간순간 엄마 생각에 울컥하고, 버림받고 갈기갈기 찢어졌던 과거를 담담하고 발랄하게 얘기하고, 순간 스쳐가듯 웃고 울고, 또 미친듯이 웃는다. 그렇게 지난 삶을 더듬어가다가 마침내 그의 반쪽이라고 생각했던 토미마저 그를 버리고 떠났을 때, 이미 반쪽을 잃은 상태에서 한 다리와 한 쪽 눈마저 빼앗긴 것 같던 그때에 다다르자 그는 쪼개진 그 자신을 견딜 수 없었는지 무너져 내렸다. 엄마, 루터, 토미의 목소리가 무너진(가발을 내던지고 토마토를 으깬) 그에게로 번갈아 와닿았다. 세 방향에서 들리는 목소리, 비추는 조명. 헤드윅의 머리 속에서 세 가지 목소리가 그를 셋으로 쪼개는 것 같았다. 파랗고 빨간 조명과 세 목소리 속에 서 있는 조드윅은 정말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차마 달래줄 수도 없을만큼 압도적인 상처와 절망, 존재감. 그를 달랜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허함을 가진 소년, 토미에게 헤드윅이 내밀었던 손, 긴 시간이 흐른 뒤 그를 버렸던 락스타, 토미가 다시 내민 그 손. Wicked little town을 건너 무대 밖으로 나간 헤드윅은 행복했을까. 그땐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극에 휩쓸리듯 멍한 채로 그를 보냈지만 지금 문을 열고 나가는 그 뒷모습을 떠올려보니 왠지 슬퍼진다.
  • 조뒥이 새롭게 설정한 듯한 엄마 헤드윅과의 관계는 인상적이었다. 아들의 새 인생을 위해 그녀의 이름을 주고, 다시 찾을 수 없게 사라져버린 그녀. 어린 한셀만큼 외롭고 아팠던 헤드윅. ㅠㅠ

  • 음 사실 웅드윅을 보고왔다, 이러저러했다! 지금까지 봤던 바로는 헤드윅은 이런건가! 아닌가! 를 쓰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봤던'에서 글이 길어져부렀다. 어차피 홀로 주절대는 블로그, 쓰는 김에 끝까지 주절대보기로 한다.
  • 조드윅 이후 두 달만인가, 웅드윅을 보러갔다. 내 기억 속의 최재웅은 머더발라드의 나쁜데 아련한 ㄱㅅㄲ 탐. 상남자가 어떻게 헤드윅을 연기하는지 궁금했는데 등장하자마자 바로 탐은 잊고 웅드윅으로 이미지 체인지. 배우란... ㅎㅎ
  • 웅드윅은 조드윅보단 제정신 잡고 있는데 일부러 더 미친 척하는 듯했다. 내가 본 조뒥은 이츠학에게 매우 따땃했는데(그래서 이챡 캐릭터가 좀 죽은 것 같기는 했다.) 웅뒥은 손뒥에서 봤던대로 이츠학에게 자신이 당했던 대로 희생을 요구하고 무시하고 괴롭히는 쪽. 근데 웅뒥은 내심 이츠학을 불쌍히 여겼던 것 같다. 조뒥처럼 대놓고 아끼지는 않았지만 못되게 굴면서도, 에휴 됐다, 하면서 물러나는게 일부러 저렇게 위악을 떠나 싶었다. 웅드윅은 감정적으로도 아직 상처가 겉으로 드러나있는 것 같았는데 루터에게 버림받고 wig in a box를 부를 때 참 많이 울고 아파하더라. 그런 상황에서도 웃을 수 밖에 없었지만 힘겹게 힘겹게 웃다보니 그는 웃을 수 있게 됐다. 그의 첫사랑 음악이 그를 위로하기도 했고, 그가 입버릇처럼 말한 대로 우는 것보단 웃는 게 나았을테니.
  • 웅드윅은 감정적인 부분에서 참 좋았다. Wig in a box도 그렇지만, 폭발적으로 쏟아내는 Angry inch에서도 젖어있는 얼굴로 절규하고 여기저기서 두드려 맞고 무너진 채(실수로 넘어진 것 같았지만 좋았음) 그 모든 시작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고, 이미 처참하게 뜯겨진 스스로를 미친듯이 쥐어뜯는 Exquisite corpse은, 아.. ㅠㅠ....  그야말로 처참하게 무너지고 부서지고 으깨진 그.  남자와 여자, 동독과 미국, 미추, 정상과 비정상, 진짜와 가짜, 서로 공존할 수 없던 것들의 경계 그 자체였던 헤드윅. 그 경계에 서있었기 때문에, 그 경계 자체였기 때문에 스스로를 온전히 안을 수 없었던 그는 완전히 부서진 후에야, 그가 손 내밀었고 그를 버렸던 토미의 노래를 통해 스스로를 인정한다. 그를 닮아있어 미워하고 싶었던 이츠학 역시 인정하면서 두 손을 꼭 잡아주며 웃는 웅드윅의 마지막은 다행히 행복을 빌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험난할지라도 어딘가에서 그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 조뒥의 엄마가 좋았다면 웅뒥은 토미가 좋았다. 조금 촌스럽지만 끝내주게 섹시했던 바로 그 토미. (목소리도 겁나 좋고)

  • 헤드윅을 보면서 들었던 이런저런 생각들이 있다. 헤드윅은 게이일까 트랜스일까 같은 질문들. 내가 알기론 게이는 남성의 성정체성을 갖고 남성을 (혹은 여성으로서 여성을) 사랑하는 이들이고 트랜스젠더는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의 성정체성을 가지고 남성을 사랑하는 이들(혹은 그 반대)인데. 조드윅을 볼 때였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헤드윅은 게이인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기 위해 그리고 자유를 찾기 위해, 성전환 수술을 당했고 남성도 여성도 아닌 몸이 되어 그때문에 그 다음 사랑에게마저 버림받게 된거라면.. 이후에 가발을 쓰고 화장을 하고 반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본인의 정체성이라기보단 이미 훼손된 스스로의 모습에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마지막에 스스로를 받아들일 때 그는 모든 치장을 걷어낸 것이 아닐까. 남자는 아니지만 여자도 아닌, 혹은 남자이기도 여자이기도 한 모습. 그 당시 공연을 보면서 헤드윅이 여장을 한(혹은 그냥 존재하는) 그 스스로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흔히들 헤뒥을 언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생각이 들자 왠지 언니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이건 너무 나간건가ㅎㅎ 잘 모르겠다

  • 웅드윅을 보고와서 미첼의 영화 헤드윅을 봤다. 영화는 영화대로 또 내 머리를 삥삥 돌게 만들었다. 확실히 영화는 제한된 무대보다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었다. 그래서 좋은 것도 있고 그래서 무대가 좋은 부분도 있고. 영화를 보고 새롭게 이해한 것들이 많았는데(한쪽 다리와 눈으로 나뉜 반쪽 얼굴이 합쳐지는 것, 잃어버린 반쪽은 토미가 아니라 헤드윅 그 자신이었다. 그래서 계속 찾을 수 없었던 거야.. / 마지막에 토미와 이별하는 장면. 그들은 다시 안 만났겠지) 영화도 두어번 더 보면 또 새로우려나. 그럼 그때 또 주절주절해야지.

  • 헤드윅은 정말 좋다. 글 쓰면서 맨날 정말 좋다고만 올리는 건 같긴 하지만, 그건 정말 좋은것만 올리기 때문이다ㅎ.ㅎ 왠지 그냥 그랬다거나 별로였다는 후기는 진도가 안나감. 그러다가 안씀. 하지만 헤드윅은 내 머리를 팽팽 돌게 하기 때문에 더 좋다! 아마 시간이 좀 더 흐르거나 뮤나 영화를 다시 보거나 하면 또 다른 생각이 들겠지.
  • 헤드윅이 좋은 이유2: 노래가 끝내주게 좋다. 들을수록 좋고 가사를 곱씹을수록 좋고 듣다보면 극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면서 유레카!하는 순간이 나타나서 더 좋다. 미첼은 천재가 아닐까..

  • 끝! (모바일로 쓰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