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

2014. 7. 15. 21:27Like/Play

<여신님이 보고계셔>

올해로 삼연, 소극장에서 중극장으로 넘어온 <여신님이 보고계셔>에 대한 이런 저런 끄적거림.(두서없음 주의, 주관 주의)



- 2012년 초연 때는 공연 자체보다는 공연을 봤을 때의 내가 더 기억에 남는다. 내 상태나 감정, 여러 생각 같은 것들. 

예그린 때 <여신님>을 눈여겨 본 친구의 추천으로 기대하면서 예매도 무지 일찍 했었는데 그날 꽤 아팠다. 열은 오르는데 취소는 안되지, 돈 버리긴 아깝고 해서 꾸역꾸역 갔었는데 몽롱한 상태에서 봐서 그런지 아련아련 예쁜 필터 낀 것처럼 보였던 건 반전. 


초연 무대는 좁고 차가운 철골 무대, 그 위에 선 건 한국전쟁 중인 무대만큼 차가운 군인 여섯 명. 어쩌다 무인도에 왔지만 생존을 위해 더욱 잔혹하게 서로를 밀어붙여야 했던 군인들. 하지만 이 뮤지컬은 군인 이전에 인간인 그들을 얘기한다. 철골 위에 꽃들이 꽂히고 시커먼 장정 여섯은 꺄- 소리 절로 나게 귀여워진다(심지어 숨 멎게 무서웠던 북한군 상위까지ㅎㅎ)


무인도 탈출을 위한 일종의 강제 평화 협정을 맺고 여신님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낸 군인들은 스스로가 가장 사랑하고 기다리는 마음 속 가장 연하고 예쁜 부분을 여신님에 투영하기 시작한다. 누군가에게는 기다리고 있는 딸, 누군가에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는 누이동생, 누군가에게는 이뤄지지 않은 연인, 누군가에게는 어머니, 또 누군가에게는 떠나간 가족. 살기 위해 군복 안에 감춰두었던 말랑말랑한 부분을 꺼내고 그 마음으로 서로 교감하자 군모에도 꽃이 핀다. 여신님은 잔혹하고 차가운 전쟁 속,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 운명의 군인들에게도 존재하는 인간성이자, 차갑고 차가운 현실 속에서 깊이 숨어있더라도 분명히 존재할 그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다. 철골에 꽃이 피고 군모에서도 꽃이 자라고, 결국 모두 돌아갈 곳으로 마음 속 간직한 그들에게로 떠나가지만 다들 그 꽃들을 간직하고 뒤돌아선다는 동화같은 이야기. 열 때문에 오락가락 눈 앞이 희뿌연 채로 봐서 그런지 더 동화같고, 환상같았다. 좋아하는 영화인 <웰컴 투 동막골>이 떠올라서 좋기도 했고, 꽤 적나라한 폭력(현실)에 놀랐지만 엄청 귀여운 안무와 너무 예쁜 노래들 덕분에 그저 마냥 행복했었다. 그러다 어두운 공연장에서 나온 뒤 탁 트이는 시야때문에 그냥 환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초연 캐스트는 최호중(영범), 신성민(순호) 최성원(석구) 임철수(창섭) 주민진(주화) 이지숙(여신님) 동현........은 기억이 안나네



- 2013년에 재연이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기대하며 다시 보러갔었다. 큰 줄기 말고 세세한 인물들의 스토리가 많이 와닿았던 재연. 초연때는 기억조차 안나는 동현 에피소드와 넘버(돌아갈 곳이 있어)가 가장 마음을 아리는 부분이 되고, 순호의 트라우마와 트라우마 이후의 외로움(순호는 '돌아갈 곳이 있어'를 함께 부르지 않는다. 무대에도 올라오지 않는다. 탈영과 형의 죽음으로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에)이 더 절절하게 느껴지면서 캐릭터 하나하나의 상황과 감정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처음 볼 땐 그냥 아, 그렇구나~ 오, 그랬구나~ 하고 이야기를 따라갔다면 재연 때는 폭풍 감정이입 ㅠ_ㅠ 그래서 돌아갈 곳이 있어가 참 가슴아프고 제일 기억에 남는 포인트가 됐던 것 같다


이땐 맘이 지치거나 힘들 때 종종 보러가거나 OST 들으면서 스스로를 달랬던 것 같다. 군인들 토닥토닥해주는 여신님에게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내 '여신님'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여러모로 마음이 따뜻했던 재연.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보다는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전해줬던 것 같다.






- 그리고 2014년 삼연. 어찌 보기는 했다만 막 오르기 전부터 이래저래 말이 많았던 삼연. 여신님이 아마 최근 창작 중에는 가장 흥한 극일텐데 그래서 그런지 관객을 아주 호갱으로 아는 느낌. 극은 여전히 좋았고 조금 더 좋아진 부분도 있고 앞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그치만 이런 따뜻한 극을 보면서 나를 지들 통장으로만 아는 제작사가 계속 생각이 났고, 찝찝했다. 장사꾼이 돈 벌려고 장사하는 건 맞지만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로만, 그것도 멍청하게 머리를 굴리는 제작사 연우무대덕분에 두 번 볼 거 한 번만 보게 되었으니 내 통장 지켜줘서 고맙다 해야 하나ㅎㅎ


못 보고 지나가 정말 보고 싶었던 전성우 순호를 볼 수 있게 된 건 좋았다. 원체 귀엽고 조금 영악한 소년같은 느낌. 신성민 배우가 가장 똑똑하고 머리 굴리는 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릴 것 같은 순호였다면 전성우 배우는 똑똑보다는 영악이 어울리고 타고난 귀여움을 너무 잘 이용하는 것 같아서 귀여우면서 얄미워.ㅋㅋㅋㅋㅋ 너무 귀엽단 말이야 


삼연에서 좋았던 것: 형균영범(호중영범이 가장 좋았는데 뛰어 넘은 것 같아!!! 노래도 정말 잘하고 진짜 따수워), 성우순호(바닥에 '여신'이라고 쓰는 거 좋아. 행복해 보임. 행복한 나무늘보... 활짝 웃으면 귀염사, 악몽이랑 멘붕씬은 최고. 나도 따라 멘붕) 바뀐 전쟁씬, "배신자는 전쟁 끝나고도 처분 대상이야!!" (순호, 탕!), 그간 몰랐던 디테일들(성민순호의 "(멈칫) 여신님 자리엔 여신님 것만 두는거야!"에 감탄. 그치 거기 니가 뭐 해놨으니까! 나만 이제 발견한 건가)과 여신님 바뀐 의상들.


+ 그런데 새로 발견(?)한 것 중 좋지도 싫지도 않지만 그저 맘이 좀 아픈 게 있다면 결말이 너무 확실해 보이는 것. 그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새드엔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떠나는 이, 남겨진 이들 모두 다시 만날 순 없었겠지만 각자의 여신에게로 돌아갔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 엔딩에서는 영범의 마지막 대사가 끝나자마자 부웅- 하고 전투기 소리가 들리고 밝은 빛이 무인도를 비춘다. 그리고 남아있는 세 명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표정. 떠나는 이들도 남겨진 이들도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느낌이 너무 강하게 박힌다. 생각해보면 당연히 그랬을테지만, 왠지 재연때의 그 따스함이 깨진 느낌.....ㅠㅠ 끝까지 동화이기를 바랐던 마음이 꽤 컸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