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삼촌

2021. 6. 1. 13:59In the Box


삼촌에 대해 떠올리면 오대오 가르마의 다소 긴 머리에 환하게 웃고 다정하고 가끔 동생을 둘러메고 뺑뺑 돌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랑 동생이랑 삼촌과 같이 에버랜드같은 곳에 갔던 것도 기억이 난다. 우리 아빠는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고 짜증이 나면 무섭게 화를 내는 사람이어서 나는 그런 곳에 가보고 싶단 말도 안 했고 아빠랑은 가고 싶지도 않았는데, 그날은 좋았다. 아무도 화를 내지 않았고 날씨는 좋았던 것 같고 튤립같은 꽃이 피어있었던 것도 같다. 에버랜드가 아니고 서울랜드였던가. 같이 찍은 사진과 그 분위기만 기억이 난다. 행복하고 따뜻하고 즐거웠던 기억.
삼촌과 엄마아빠가 어떻게 알게된 사이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날부턴가 우리집에 자주 찾아왔고 나와 동생과 잘 놀아주었다. 그무렵 무척 바빴던 것 같은 아빠를 빼고 넷이서 여기저기 많이 놀러다녔다. 나는 삼촌을 정말 좋아해서, 사실은 삼촌이 우리 아빠였으면 좋을텐데 같은 생각을 여러번 했다. 삼촌이 놀러오면 애어른같았던 나도 삼촌 팔에 매달려 놀았다. 그 장면들이, 기억들이 자세히 남아있지 않아서 마음이 아프다. 사실은 잊으려고 애써 노력했던 기억이라 이만큼이라도 남아있는게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삼촌은 갑자기 사라졌다. 우리 엄마아빠는 자주 우는 사람들이지만, 그때가 엄마아빠가 엉엉 우는 것을 처음 봤던 때였다. 난 그때 엄마아빠도 소리내며 운다는 것에 너무 충격을 받았는데 그게 삼촌이 죽었다는 소식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아니면 그 두 장면이 겹쳐져서 감정이 전이된 건지도 모른다. 나도 아마 울었을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느날부터 갑자기 오지 않았던 삼촌. 엄마아빠가 또 울까봐 삼촌이 왜 죽었는지는 고사하고 삼촌 얘기조차 꺼낼 수가 없었던 마음만 기억난다.
그렇게 나는 컸고 많은 시간과 사람들이 스쳐갔다. 그러면서도 가끔 삼촌을 떠올렸다. 나는 그저 그랬었지, 하는 마음인줄 알았는데 얼마 전에야 깨달았다. 삼촌의 죽음이 내가 이 생애 마주했던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었으며 나는 그 죽음에 무척 큰 충격을 받았었고 삼촌이 너무 보고 싶었지만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을 묻어두었다는 것을.
나는 가끔 가까운 사람들이 죽는 상상을 한다. 바람은 아니고 불안에 가깝다. 열번 중에 두번 정도는 삼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삼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어린이였고 삼촌에 대해선 하나도 모른다. 그때 우리 엄마보다 어렸으니까 지금 나보다 서너살 정도 많았던 나이였겠다. 백수였나, 어떻게 평일에도 우리랑 같이 놀러다녔지. 아닌가 주말이었나. 그런데도 사람이 많은 곳에 우리를 재밌게 해주려고 데리고 갔었던가. 어떤 삶을 살다가 어떤 이유로 떠났을까. 삼촌은 나와 동생을 보고 싶어했을까. 삼촌이 죽지 않았다면, 어릴 적 내가 너 엄청 예뻐했었거든! 이라고 말하는 꽤 많은 다른 삼촌들처럼 그저 어색한 엄마아빠의 친구 중 하나로 남았을까.
엄마에게 언젠가 삼촌에 대해 물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엄마에게도 상처였을 일이 내게도 상처였다는 고백이 엄마를 또 마음 아프게 할까봐 그게 조금 두렵다.
하지만 언젠가 그때의 기억이 아주 즐거웠다고 삼촌을 생각보다 오래 기억하고 있었다고 말해야겠다고, 아주 오랜만에 기억을 헤집으며 결심했다. 어떤 것들은 이렇게 한 이십년쯤 지나서야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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