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

2021. 12. 11. 23:47In the Box


인생의 변곡점같은 것, 굳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는데 올해에 마주하고 말았다.
그에 대해 쓰자면… 어디까지 솔직히 써도 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고민하다가 그냥 쓰기로 한다. 오래된 연인의 배신으로 8년의 연애가 끝이 났다. 이 문장을 쓸 수 있게 된데에 6개월이 걸렸다. 아직도 종종 눈물을 흘리고 마음은 아프지만, 죽고 싶은 마음은 이제 없고 제정신을 차려 다음 삶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언젠가 고통 절망 내가 느꼈던 감정들과 그 상황에 대해서도 자세히 쓸 수 있는 날이 오겠지. 하지만 아직은 아니고, 오늘은 고마운 것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리터럴리 내 세상이 무너지고 있을 때, 내 세상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도록 곁에 있어준 친구들에 대해.
처음 사실을 알았을 때에 지체없이 전화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떠오른 것에 대해 감사한다. 그날은 당장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는데 월요일, 그것도 오전에 연락했을 때 바로 전화를 해준 친구들. 전화를 받아준 친구들. 오열하는 내 말을 들어주고 같이 울어준 친구들. 집에 얼른 가라고 택시비를 보내주고 내 상태를 살펴준 그 친구들이 나를 살렸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집에 왔고, 외면하고 싶었지만 정확히 이야기를 했으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편애에 가까운 응원을 받았고, 무너지고 무너질때 옆에 있어준 덕분에 무너질만큼 무너져도 정말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 곁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곁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들이 정말로 내 세상을 버텨줄 수 있었다는 건 겪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체력도 노력도 부족해 생각만큼 다정하지 않은 내가 앞으로 참 많이 갚으며 살아야겠구나, 생각했다. 친구들에게 잘 하고 싶다는 마음도 이렇게까지 진심인 적은 없었다. 겪어봐야만 알 수 있는 그런 마음일까. 어른인척 지내왔지만 꼬꼬마에 지나지 않았던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무너지는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내가 위로하고 응원하고 독려했던 친구들이 어느새 그 많은 것을 견디고 나를 위로한다.
크게 느끼고 경험한 것은 이 시간은 오직 나만이 보내는 것이라는 것. 친구들이 곁에 있어주고 위로하고 사랑을 주어도, 시간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죽을 것만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스스로 이겨내야 하고 또 버텨내야 한다. 죽고 싶지만 죽기는 싫어서 해결해보려고 했고 조금씩 상황은 나아졌다. 여러 도움을 받았고 현재진행형이다. 아직 한참 먼 것 같지만 또 생각보다 멀리까지 왔다. 나는 정말로 괜찮아지고 있다. 그렇게 지내며 친구들도 그렇게 혼자서 버텨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친구들이 내게 보내준 지지와 응원, 위로는 그 경험에서 나왔다는 걸 나는 이제야 진심으로 알게 되었다. 완전한 이해없이 뿌리듯 나누었던 마음이 오백배의 진심으로 돌아왔고, 그 마음이 정말로 나를 살렸다. 고마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아직도 힘들어서 운다. 아마도 앞으로도 꽤 오래 울겠지만, 이 경험으로 인해 나에 대한 사랑을 눈으로 보았고 마음으로 느꼈다. 우습게도 사랑을 잃고 느낀 사랑의 힘이 나를 살렸고 살릴 것이다. 큰 하나를 잃고 작지만 강력한 여럿을 얻었다고, 내가 가진 사랑의 총량을 어렴풋 만져볼 수 있었다고, 감히 생각해본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거칠게 쓴 이 글의 마음을 언젠가 내 친구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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