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야

2014. 11. 3. 02:44The Moment


Canon EOS 350D 14.10.어느날


시간의 공백은 친밀감을 증폭시킨다. 나는 가을을 원래 좋아하지만 인지하지 못한 새 차가워진 공기나 울긋불긋 물든 색깔을 보면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가을을 좋아한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만남이 짧아서 더 다음 가을을 기다리게 되는 거겠지. 아마도 이건 시간의 마력. 이날은 동생을 보러 갔다. 동생과 난 썩 친밀한 사이는 아니다. 썩 안 친한 것도 아니다. 그냥 남매같은 남매라고 생각한다..ㅎ_ㅎ 그래도 오랜 시간 떨어져있고, 떨어져서 간 곳이 군대라는 사실은 아무래도 없는 듯 있는 친밀감을 아주 크게 증폭시키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새벽부터 짐을 메고 동생 얼굴 보러 갔을리가....... 라고 츤츤대 본다. 이것도 시간의 마력....과 군대의 마력?ㅋㅋ.... 


동생의 얼굴이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었다. 이날은 날씨도 아주 좋았다. 여러모로 다행.


Canon EOS 350D 14.10.어느날


여긴 서울보다 남쪽인데도 벌써 해가 들어가면 꽤 쌀쌀했다. 그래서인지 벌써 앙상해진 나뭇가지들이 많았다. 높은 곳에는 감들이 달려있었다. 나는 까치밥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그 단어를 통해 함께라는 마음이 아주 오랫동안 예쁘게 전해지는 것 같아서다. 까치밥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Canon EOS 350D 14.10.어느날


면회와서는 할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동생이 나오자마자 이른 점심을 먹었는데 딱새가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철조망과 딱새, 군 부대가 있는 산.


Canon EOS 350D 14.10.어느날


면회가서 할 일은 정말 별로 많지 않았다. 나는 신분증을 두고 와서 영내로는 못 들어갔다. 군대 면회 갈 때 신분증이 필요하단 걸 생각도 하지 못했고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으니...허허 그 덕분에 동생은 동생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했고 나는 엄마와 끝내주게 좋은 날씨를 즐겼다. 의도치 않게 동생의 연애를 방해하지 않는 누나와 엄마가 되었지만 나쁠 건 없었다. 묘한 이질감이 들어 좀 우습기도 어색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더 친밀해지는 느낌이었다면 이상할까. 그래 너도 연애해야지 짜샤 군인 화이팅. 동시에 여자친구에게도 다른 의미로 화이팅을. 


Canon EOS 350D 14.10.어느날


육해공 앞마당에 가을이 예쁘게도 피었다. 


Canon EOS 350D 14.10.어느날


그리고 예쁜 노란 은행나무들. 가을 되면 은행냄새가 온 거리에 가득해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지만 나는 그래도 은행나무가 좋다. 너무 예쁘다. 중학교를 다닐 때 교실 배정이 이상하게 꼬여서 중학교 1학년 때와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교실을 썼다. 중학생의 시작과 끝을 같은 교실에서 보낸 셈이다우리 교실 옆에는 화단이 있었고 거기에 은행나무가 몇 그루 서있었다. 2층이었던가, 3층이었는데 창문 여섯개 정도가 꼭 화폭처럼 은행나무의 가장 예쁜 부분을 담고 있었다이상한 학교 구조때문에 딱 우리 반만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가을만 되면 교실의 한 쪽 면이 온통 샛노랗게 물들었다. 열 네 살과 열 여섯 살의 가을 날, 교실에 앉아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눈이 부신 노란 벽이 있었다. 물론 교실에 은행 냄새가 진동을 할 때도 있었지만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잊지 못할 풍경이 펼쳐지곤 했다

 

사진이라도 찍어둘걸지금도 아쉬워서 잊지 않으려고 종종 떠올리는 가을의 기억. 오랜만에 은행나무를 보고 그때 생각을 했다.


Canon EOS 350D 14.10.어느날


Canon EOS 350D 14.10.어느날


파란 하늘에 번지는 노란색이 예쁘다. 

사실 사진을 찍으면서는 중학교 때의 은행나무 생각을 하진 않았는데 사진을 보면서 글을 쓰면서 그때 생각이 난다. 그때쯤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었다.


Canon EOS 350D 14.10.어느날


길을 따라 걸어 내려와 아무도 다니지 않는 예쁜 길 발견. 엄마와 돗자리를 깔고 드러누워 하늘을 봤다. 길도 하늘도 너무 예뻐서 잠시 현실을 떠나온 듯한 기분으로 엄마와 손을 꼭 잡고 하늘을 봤다.


Canon EOS 350D 14.10.어느날


누워서 본 길


갤럭시S3 14.10.어느날


누워서 본 하늘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보다 일찍 산책을 끝낸 동생에게 전화가 왔고, 넷이 같이 신나게 탁구를 치고 차를 마시고 서울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기절해 곧바로 월요일 시작. 다음날은 너무 현실같은 현실이라 월요일이 아니라 일주일의 무게를 짊어진 금요일 같았고 그래서 꼭 시간을 까먹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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