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 떠있는 날들

2020. 2. 15. 17:40In the Box

 

밴쿠버에 온 지 18일째. 생각보다 시간이 훅훅 간다.
오래 있을 거란 생각에 여행자보다 천천히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18일 동안, 고작 다운타운과 버나비 정도를 다녔으니 여행이었다면 상상도 못할 스피드지. 여행으로 왔으면 벌써 록키 보고 왔을 거야.

아직 일을 본격적으로 구하지 않고 그저 돈을 쓰고만 있는 날들이라 재미없을래야 재미없을 수가 없다. 동네만 걸어도 들뜨고 잉글리시베이만 가면(도보 10분) 그렇게 맘이 뿌듯할 수가 없다. 걸어서 바다에 갈 수 있다니! 구글맵으로 걸어서 10분, 그러니까 왕복 20분 거리면 망설임 없이 걷기도 하고 오늘은 무려 5km나 걸어 스탠리파크를 빙 둘러왔다. 날이 좋으면 걸으러 가고 날이 안 좋으면 도서관이나 맛있는 걸 먹으러 가고 있다. 소비만 하는 삶이 어찌 즐겁지 않을수가.

문제는 슬슬 돈을 벌어야 된다는 건데, 면접 본 회사는 영 가망이 없어 보인다. 친구도 있고 같은 직종으로 일할 수도 있고 이민에도 도움이 되니 현재로선 완벽한 패였는데 아쉽다. 다른 회사 알아보긴 하겠지만 역시 영어도 걸리고.

온지 며칠 안됐는데 이런 생각을 해도 되나, 자꾸 그런 마음이 든다. 결혼도 안 해 부양가족도 없어, 나름 자유로운 몸이지만 딸린 고양이가 있고 오랜 애인이 있는 것도 고민을 무겁게 만드는 요인이다. 처음부터 이민을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점점 살고 싶어져서 큰일이다. 고작 2주만에. 내가 또 조급증을 부리는 건 아닐지, 조금은 두고봐야 할 일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ㅋㅋㅋㅋ, 일단 여러 방편을 알아봤는데 뭐 뻔하게도 답은 영어다. 영어를 잘 해야 내 기존 경력을 살려서 캐나다 경력을 만들 수 있을테고 시험 점수도 높게 나올테니. 결국은 뻔한 얘기. 영어 열심히 하는 수 밖에.

너무 오래 고민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어차피 맞닥뜨리면, 현실은 고민과 같지 않을테니. 차근차근 부딪히면서 생각할 수 밖에 없을테니. 너무 조급해하지 않기로, 너무 불안해하지 않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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