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밴쿠버살이

2020. 6. 20. 14:41in Vancouver

 

 

 

 

6월의 반은 별 생각 없이 눈만 꿈뻑하는 새에 지나가 버렸다.

그 사이 나는 S네 집에서 만취해서 꽐라가 되었다(고 한다.)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꽃새우를 기어이 사서 J가 한국 가기 전에 같이 먹고 저스트 댄스를 열심히 추었다. J가 한국에 간지도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가네. 사실 J가 간 주말은 사흘 내내 집에만 박혀있었다.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취해서 헤롱헤롱 댔던 것 같다. 이러지 말자 싶다가도 그냥 그래 의지하던 친구가 갔으니까, 밴쿠버에서의 첫 이별이니까 하면서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가끔은 마음에 안 드는 내가 나타나도 그냥 그런 대로 두는 편이 좋은 것 같다.

날씨가 좋았다가 안 좋았다가 하는데 대개 주말에 비가 오고 추워서 좀 불만스럽다. 나는 밴쿠버 겨울에는 못 살 것 같다고, 문득 생각했다. 자꾸 비가 와서 밖에 나가기 싫어지고 밖에 안 나가니까 좀 우울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M도 곧 일본에 돌아간다고 해서 조금 더 마음이 쓸쓸해졌다.

캐나다에 가장 살고 싶어지는 순간은 출근길이다. 주말에 계속 혼자 있다보면 일요일 쯤에는 많이 심심하고 조금 우울해지기도 하는데 화요일 출근길에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날씨까지 좋으면 정말 행복지수 최고. 아침에 일찍 나와 30분을 걸으며 바람도 맞고 운동도 하고 햇살도 즐기고. 한 주를 시작하는 것이 지겹지도 두렵지도 않고 울고 싶지 않다는 것. 심지어 즐겁고 기대되고 좋다는 것. 이런 게 행복이 아니면 대체 뭐가 행복이야. 출근길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이 캐나다에 살고 싶은 가장 큰 이유구나. 오늘도 조금 늦게 준비했지만 열심히 재밌게 신나게 걸어서 출근했다.

금요일 저녁은 조금 힘들다. 체력이 딸리기도 하고, 한 주를 끝낸 탈력감 같은 것 같기도 하고 (엇 사전을 찾아보니 탈력감이라는 단어는 한국어에 없네. 힘이 모두 빠져버린 감각이라 무력감으로 대체할 수는 없어 그냥 쓴다). 그래서 늘 맛있는 걸 먹고 싶은데 오늘은 레이즈 솔트앤비니거 남은 봉지를 탈탈 털어넣고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마셨다. 처음 먹었을 때 그 번개 맞은 것 같은 찌릿함을 떠올려보면서 탈탈탈. 식초 맛이 너무 좋다, 요즘. 와인을 딱 한 잔만 먹은 것도 오늘의 놀라운 일.

다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러닝 주 3회는 못 지키지만 주 1회는 꼭 뛰고 있고, 그래도 지난 주와 이번 주는 두 번씩 달렸다. 내일은 달릴지, 근력 운동을 할지 컨디션을 보고 결정해야지. 친구들과 운동톡방을 만들어서 주 3회 운동을 인증하기로 했다. 혼자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같이 하는 게 좀 더 재미있는 것 같다. 어릴 때 친구들이랑 여행을 더 많이 다녀볼걸, 그런 생각도 요즘 자주 한다. 올해 친구들과 많이 여행을 하려고 했는데 소중한 시간을 빼앗겨버려서 좀 많이 속상하다. 사실 이번주는 날 보러 밴쿠버에 오기로 한 두 친구들과 함께 캐나다를 여행하고 있어야 했는데. 아쉽고 또 아쉽다.

사장님이 총 맞았던 얘기를 해줬다. 멕시코에 살 때 택시에서 내리다가 총을 맞았다고 한다. 20년 전이라 지금은 웃으며 말하셨지만 나는 웃다가도 너무 끔찍해서 얼굴을 와장창 구겼다. 총 맞은 사람 처음 보죠? 그래서 당연하다고 했다. 저는 경찰이나 군인 말고는 총 든 사람도 못 봤는데요... 너무 먼 얘기 같아서 무슨 설화같다가도 눈 앞에서 흉터를 보니까 또 너무 현실감이 느껴져서 놀랍고. 둘이 밥 먹기 어색해서 꺼내신 얘기 같은데, 재미있는 얘기는 아니지만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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