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과 파란색과 나의 계절

2020. 5. 20. 15:46in Vancouver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지만 가장 좋아하는 달은 오월이다. 첫 번째 이유는 내 생일이 오월에 있어서. 어릴 때부터 오월이 계절의 여왕이라는 말만 들으면 괜히 내가 다 으쓱했다. 나는 이렇게 예쁜 달에 태어났지롱. 두 번째 이유는 날씨도 색깔도 어감도 예뻐서. 오월이라는 단어도 마음에 들고(우리 고양이 이름도 오월이 될뻔했었다) 변덕스러운 초봄을 지나 파랗고 초록색으로 진하게 물드는 오월의 색도 좋았다. 적당히 따땃하고 바람은 적당히 시원한, 여름이라고 하기엔 봄 같고 봄이라 하기엔 조금 진해진 계절. 

요즘 밴쿠버의 오월이 너무 반짝이고 예뻐서 자꾸 감상에 젖는다. 매일 오가는 출근길에서 매일 같은 장면을 찍고, 퇴근길엔 빙빙 돌아 조금 더 날씨를 만끽한다. 어느날은 아침에 너무 일어나기 싫어 트레인 타고 출근해야겠다 싶어 뒹굴거리며 창문을 열었는데 바람이 차고 햇볕이 따뜻한 게 딱 걷기 좋은 너무 예쁜 날씨인 거다. 벌떡 일어나서 출근 준비 후다닥 하고 뛰쳐나왔지 뭐. 한국에서 좆같은 회사를 다닐 때에도 아침 바람을 맞으며 걷는 벚꽃 가득한 출근길은 좋아했었는데, 여기에선 가끔 아침에 너무 기분이 좋아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밴쿠버는 봄 여름 날씨가 다인데, 그게 사람들을 못 떠나게 한다는 얘기가 정말 맞는 말인 거지.

올해의 나는 붕 떠있는 중. 현실에서 한 발을 떼고 한 발을 마저 떼 볼지 아니면 띄웠던 발을 어디에 내려둘지, 가끔은 까맣게 잊고 가끔은 그 생각에만 빠져있다. 미리미리 계획하고 대처하는 어른이 되고 싶은데 닥쳐야 하는 잘못된 마감 인간의 습관을 들인 게으른 어른이 되었다. 어차피 올해는 그렇게 지내기로 한 해라는 걸 자꾸자꾸 되뇌면서 잠깐의 상념들, 찰나의 순간들을 잡고 기록하고 돌아보기라도 열심히 해보기. 일기를 쓰고 사진을 정리하고 영상을 모아 편집할 때마다 느끼는 이 묘한 감상. 행복하지만 이 행복을 지속할 방법은 사실 잘 모르겠어. 나중에 이때를 돌아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