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9월

2014. 9. 9. 19:31The Moment


140903 iPhone4 @터방내


허덕대는 사이에 개강을 했고 정신없이 첫 주를 보내고 다시 추석 연휴를 맞았다. 어느새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9월. 어느새 두 번째 주가 지나가고 연휴는 끝나고 있다. 앞으로 남은 날이 아득하다. 즐겁기도 우울하기도 힘차기도 외롭기도 하다. 이제 꽤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학교를 다녔다. 새내기때 선배가 데려가던 밥집와 카페, 술집과 학교의 여러 공간들, 나는 새내기때 넓혔던 딱 고만큼 내 영역을 만들고 그 안에서 맴돌았다. 익숙해지면서도 늘 낯설었고 가끔 찾아가면 반가움이 불쑥 앞서다가도 군데군데 꽤 아픈 기억들이 새겨져 있어 끙, 하고 시선을 돌리게 되는 곳들이었다. 한 학기를 쉬고 한 학기는 혼자 다니고 또 한 학기는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오랜만에 학교에 동기들이 많이 보였다. 그러다 같이 모여 밥을 먹고 1학년때 우리과 아지트라며 좋아하던 카페를 갔다. 이제는 혼자 다니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던 다른 과 수업도 익숙해졌지만, 어느새 오래된 친구들과 어느새 오래된 아지트에서 아주 오랜만에 어느새 화석이 된 우리들의 이야기를 마구 쏟아냈다. 졸업, 취업, 영어... 딱히 즐거운 화제거리는 아니었지만 참 즐거웠다. 아주 오랜만에 개강다운 개강을 맞이한 느낌이다. 


다방에 가까운 카페 터방내는 내가 흑석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들 중 하나다. 담배냄새도 나고 공부하기에는 어둡고 와이파이는 물론 가끔은 통화도 안 터지는 지하지만 1학년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20년 전에도 아마 비슷했을 것 같은 곳이다. 학교 건물들이나 과방만큼이나, 때론 그보다도 더 내게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공간. 매일, 매주 찾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오래, 잊을만하면 가끔씩 찾고 싶은 곳이다. 


140905 갤럭시S3 @There's factory


그런 곳이 한 군데 더 있었는데 올해도 아니고 이번 달 말까지만 운영을 한다고 한다. 개강 첫 주에 들은 가장 충격적인 사실. 데얼스팩토리도 내가 흑석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들 중 하나, 아니 실은 가장 좋아하는 카페다. 가난한 대학생이라 천원짜리 체인점 커피를 매일 마시긴 했지만 지갑사정이 나쁘지만 않으면, 그리고 자리가 있기만 하다면 늘 가서 앉아있던 곳. 터방내가 중대스러워 좋았다면 데팩은 중대답지 않아 좋아했다. 살짝 어두운 조명과 감성적이면서도 유쾌한 인테리어, 맛있는 커피(아이스는 착한 크기까지), 맛있는 디저트, 멋진 책들과 더 멋진 사장님 마인드까지. 너무 좋아해서 늘 설레며 가던 곳이었는데 왜 사라지는 걸까. 개강하고 처음 갔던 이날도 멋진 일러스트도 구경하고 맛있는 치즈케이크도 먹고 신나게 돌아와서 사라진다는 사실을 들었다. 앞으로 매일매일 출근 도장을 찍으면 덜 아쉬울까? 뭉텅, 지난 시간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든다.


140904 갤럭시S3 @빌링슬리관 앞


이번 학기는 다른 학교에 학점교류를 간다. 대판 공사 중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캠퍼스가 예뻐서 더워도 흐뭇하고 다닐 맛이 난다. 너무 넓고 내가 듣는 수업은 전부 저 안 쪽 강의동에서 이루어져서 힘들지만 뭐, 운동하는 셈 치기로 했다. 하지만 체력이 딸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날씨가 너무 좋았던 이날. 아직까진 혼자 다녀도 새로운 세계를 모험하는 기분이 들어 즐겁고 두근댄다. 그런 마음으로 만난 배롱나무. 요즘 자주 보인다.


130904 갤럭시S3 @코난집


그리고 넉 다운! 두 학교를 왔다갔다 해야 하는건 아무래도 힘들다. 이번 학기는 안 그래도 쉽게 지치는 나에게 견디기 힘든 한 학기가 될 것 같다. 옴팡 긴장하고 레이더를 파바박 세운 채로 한 주를 다니고는 그대로 넉 다운. 감기가 올 듯 말 듯 밀당하고 목은 이미 갔다. 연휴가 있어서 다행이지만 연휴가 지나고나면 두 번 개강하는 느낌이라 슬플 것 같다. 뽈뽈거리다가 제 풀에 지쳐 푹 늘어져있는 코난에게 동병상련 느끼기.


140908 갤럭시S3 @우리집 거실


그리고 추석연휴 시작. 어릴 땐 우리집이 큰집인게 너무 싫었다. 사촌들이 놀러와서 내 침대에서 귤 까먹는 것도 싫었고 청소하는 것도 싫었고 음식 하느라 힘든 엄마 보는 것도 싫었다. 그치만 이젠 침대 위에서 귤 먹어도 좋으니 사촌들이 놀러왔으면 좋겠고(하지만 다들 바쁘고) 청소야 여전히 싫지만 음식도 간소하게 하고 음식하는 게 꽤 재미있어진지도 오래다. 예전부터 우리집 동그랑땡은 내가 책임졌었는데 나의 조수가 군대를 간 이후 올해는 혼자 다 했다. 대충대충 만들었는데도 동그랗게 예쁘고 도톰하게 만들어져서 뿌듯했다. 동그랑땡 경력만 20여년쯤 되니 뭐 이쯤이야(훗) 하고 쓸데없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너스레를 떨어본다. 올해는 차례상을 여러 장 찍었다. 흘러가는 순간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요즘 그리 행복한 것도 아닌데 순간순간이 너무 아깝고 아쉽다. 뭐 그렇다고 알차게 꽉꽉 채워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지만.


140908 갤럭시S3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앞


저어기 사촌언니들은 결혼해서 시댁에 가고 여기 사촌언니오빠는 취직해서 바쁘고 동생도 바쁘고. 그리고 또 다른 쪽 사촌동생들은 미국에, 재수학원에. 함께 모인 사람들이 훅 적어진지도 오래됐지만 역시 유독 올해 더 쓸쓸하게 느껴졌다. 작은집 차례를 마치고 우리집 차례지내러 돌아오는 길, 떨어져있는 솔방울 발견. 가을이다. 훅 쓸쓸한 계절이다.


140909 갤럭시S3 @돌아오는 길


큰집이라 안 바쁠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다녔다. 다들 가까이 살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깝지 않았다면 1년에 한번도 볼까말까 할 테니까. 외할머니댁에 다녀오면서 하늘이 너무 예뻐 기분이 좋았다. 하늘, 햇빛, 바람이 느껴지는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음 의미라도 그렇게 부여해야지. 아빠가 에어콘 틀었다고 창문 닫으라고 하기 직전의 사진. 


140909 갤럭시S3 @우리집 거실


오늘 하늘은 예뻤다. 연휴가 아니었어도 기분이 연휴같게 될 만큼 예뻤던 하늘. 연휴는 내일까지지만 뭔가 끝났다- 는 기분이 든다. 마음의 준비는 언제나 100% 되지 않으니 언제고 출발 신호가 땅! 울리면 뛰어 나가겠지. 뭐, 아직 끔찍하진 않으니 다행이다. 달릴 수는 있겠다.




from 내 인스타그램 (@cubebox0 & @minhaa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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