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apest, Hungary (2015)

2015. 7. 30. 16:54The Moment/Europe (2015)


한 달간의 유럽여행. 단어 하나하나마다 설렜던, 한달, 유럽, 여행. 아주 단순하게 비행기표를 질렀고 여행을 떠났지만 갑자기 밀려오는 고민들도 많았다. 이럴 땐가? 이럴 때지. 괜찮을까? 별 수 없지. 여행이란게, 막상 떠나고 보면 그곳에서도 하루하루 살아남는 게 일인지라 풀어야할 고민들을 모두 펼쳐놓지는 못했지만. 내가 살던 맥락 속에서 나를 뚝 떼고 살아가는 일만으로도 객관적으로 날 볼 수 있지 않았을까, 뭔가 괜찮을 걸 채워오지 않았을까 기대해본다. 어쨌든, 난 지금 다시 현실이니까 조각들을 모아보는 것이다.  


첫 여행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였지만 어이없는 나의 실수로 하루를 날려먹고 거의 경유지처럼 지나가버렸다. 


@Budapest iPhone 5



비오고 춥고 음울했던 부다페스트는 꽤 멋이 있었지만, 힘들었다. 지친 내게 음울한 부다페스트의 중앙역은 거의 음험해 보이기까지 했다. 들어갈 곳 하나 없고 지저분한 역사, 차갑고 까칠한 사람들, 포린트는 다 떨어져가는데 가게들은 죄 카드는 안 받고 배고픈 나, 헝가리 말로 말을 거는 노숙자, 역 안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차게 부는 바람, 야간 열차에 대한 두려움. 나는 여행 체질이지! 하고 떠나왔는데 유럽에서의 첫 날에 벌써 집에 가고 싶었으니 말 다했지. 야간 열차가 슬슬 도착할 즈음, 헝가리어로 써있는 표를 당최 해독을 못해 역무원 아저씨에게 어디서 타는 거냐고 물어봤다. 기차 놓치면 큰일이라는 긴장감, 그런데 왠지 놓칠 것 같다는 불안함에 얼굴은 이미 한참 딱딱해져 있었다. 역무원은 영어를 못했지만 표를 보더니 기차 플랫폼까지 데려다 주었다. "여기서 타는 거야. 5분 후에 올라가면 돼" 헝가리어였지만 눈으로 손으로 표정으로 단단히 당부하고 떠난 아저씨. 맘이 풀리는 동시에 진한 아쉬움이 몰려들었다. 멍청이처럼 날짜를 잘 못 봐서 이 도시를 이렇게밖에 보지 못하다니. 차갑고 까칠하지만 분명 어마어마한 매력이 있을텐데. 



@Budapest iPhone 5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하고 야간 열차에 올랐다. 지친 하루에 질려 야간 열차에도 겁을 먹었지만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열차는 꽤, 낭만적이었다.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떠올리게 하는 복도식 기차와 좁지만 꽤 매력적인 쿠셋칸. 말도 많고 쾌활한 조지아에서 온 캐시와 겁 먹은 날 정서적으로 많이 달래준 한국인 언니. 덜컹거리는 기차, 조용한 객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헝가리의 저물녘. 우리는 모두 말 없이 창 밖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었다. 묘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와이파이도 데이터도 안 되고 책은 캐리어 깊숙한 곳에 있는데다가 1층과 2층 침대 사이가 좁아 허리를 펴고 앉을 수도 없어 누워있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지만 가만히 누워 스치듯 지나쳐온 부다페스트를 생각했고 격해졌던 감정을 돌아보았다.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도 뭔가 생각하고 싶었지만, 할 수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누워서 기차 소리를 듣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뜨니 체코의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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