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enze, Italia (2015)

여섯번째 도시, 피렌체. 

내가 피렌체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오로지 두오모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 나왔던 그 두오모. <냉정과 열정 사이>의 두 주인공이 스치고 스치다가 결국은 만났던 그 도시, 피렌체. 영화 속에 나오는 골목 이곳 저곳도 예뻤지만 쥰세이가 피렌체를 내려다보던 그 주황색 돔, 그리고 쥰세이와 아오이가 만났던 그 광장을 잊을 수 없었다. 영화 음악과 분위기로 피렌체는 언젠가부터 내게 어마어마한 낭만의 도시가 되어있었다.

실제로 만난 피렌체는, 아주 많이 너무 많이.... 더웠다. 햇살은 뜨겁고 드문 바람조차 건조했던 피렌체. 낭만이고 뭐고, 나갔다간 죽겠다 싶어 한낮에는 젤라또 하나씩 물고 숙소에 들어왔다. 그늘도 지지 않는 골목보다 귀족 성 같던 고풍스러운 숙소 구경과 먹을 것 많던 마트 구경이 더 즐거웠던 피렌체의 낮.

그렇게 견딜 수 없을만큼 뜨거워도 두오모를 보겠다고 조토의 종탑에 올라갔다. 땀은 나는 수준이 아니라 빨래 짜이듯 뚝뚝 떨어지고, 어둡고 좁은 돌계단은 올라갈수록 좁아지는데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로 꽉 차고, 아무리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았던 종탑. 

떠나기 전에는 여길 오르면서 냉정과 열정 사이의 한 장면이나 유럽블로그에서 두오모 성당을 오르며 하는 독백을 떠올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현실은 여기가 피렌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머리가 하얗게 되어서 그냥 오르고 올랐다. 냉정과 열정 사이 테마곡도 핸드폰에 담아갔건만 들을 생각도 못하고 정상에 올라서도 텅 비어버린 머리로 그저 피렌체를 내려다보기만. 가장 기억나는 건 종탑에서 내려다보는 두오모의 주황색 지붕과 꼭대기에 서있는 사람들, 선글라스를 끼고도 눈이 부셨던 이탈리아의 태양. 

그런데 이 사진은 조토의 종탑이 아니라 우피치 미술관에서 찍음 :) 2015.07 Canon EOS 650D @Firenze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냉정과 열정 사이 테마곡을 듣지 않았던게, 유럽블로그의 어떤 장면들도 떠올리지 않은게 참 다행이었다. 덕분에 남의 양념 없이 그때 그 풍경, 빛, 느낌이 왠지 그대로 내것으로 남은 기분이 든다.

해가 지기 전 야경을 보러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향했다. 역시나 언덕이라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며 욕도 하고 머리도 팽팽 돌았지만....

이탈리아의 태양은 '해'보다는 '태양'이 훨씬 잘 어울린다. 태양이 질 때 도시는 온통 지붕보다 더 붉은 색으로 물들고 언덕에 선 우리는 얼굴과 온 몸으로 그 빛을 받아냈다 :)

해가 지고 하나 둘 불이 켜진 야경도 한참을 바라보고 다시 언덕을 걸어 내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떤 카페에서 어떤 밴드가 비틀즈의 across the universe를 연주하고 있었다.

너무 더워 여름엔 다시 가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 맘으로는 한 낮의 피렌체도 괜찮으니 다시 가고 싶다.

생각처럼 낭만적이지 않았지만, 모든 기대를 던져버리게 한 뒤, 예상치 못한 낭만을 훅 훅 던져준 도시 :)

2015.07 Canon EOS 650D @Firenze

2015.07 Canon EOS 650D @Firenze

2015.07 Canon EOS 650D @Firenze

2015.07 Canon EOS 650D @Firenze

2015.07 iPhone 5 @Firen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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