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킹홀리데이 #.4 심난한 D-day, 유기견 이동봉사

2020. 1. 29. 16:55in Vancouver

 


1. 누가 보면 강제로 나가는 줄. 심난한 출국 D-Day
드디어 온 출국일. 마냥 설레고 기쁘지만은 않을 줄 알았으나 이렇게 심란한 줄이야. 출국 하루 전 치노를 탁묘처에 보냈는데 출국날 아침 애가 밤새도록 울었다는 짜증섞인 소식을 받았다. 적응하느라 꽤 오래 울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그 짧은 메시지가 타격이 꽤 컸다. 목이 쉬도록 울었을 치노도 걱정되고 탁묘 취소될까봐도 걱정돼서 답장을 하고서도 몇 시간을 멍하니 보냈다. 하필 어깨 통증도 출국 직전 재발해서 이렇게까지 나가야 할 일인가, 무리해서 나가는 건 아닐까 심난했다. 사실 무리해서 나가는 거 맞지만, 불안감이 터지면 미리 인지하고 있는 사실에도 휩쓸린다. 애써 불안을 다잡고 변곡점이 될 1년에 대해, 목적 없는 목적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느라 출국 전부터 에너지를 많이 썼다.
그래도 친구들 가족들 애인까지 나보다 더 기대하고 응원해줘서, 정신 차리고 어찌어찌 출국까지 했다. 사실 조금 더 고민했으면, 조금 더 막무가내가 아니었다면, 조금 덜 충동적이었다면 결국엔 안 갔을 거란 걸 안다. 조금 무식하게 미래도 조금 덜 생각하고, 그렇게 떠나기로 한 거니깐 불안해질 땐 목적 없는 목적을 생각하기로 한다.
막상 비행기 타고, 밴쿠버 도심을 달리고, 숙소 들어오니까 또 들뜨고 신나긴 하더라!

 

 


2. 짐은 한가득은데 어깨 통증 재발이요
이번에 들고 나온 짐은 28인치 캐리어 2개랑 백팩 1개, 작은 크로스백 하나. 그리고 면세로 산 기초 화장품들. 캐리어는 각각 거의 20kg쯤 돼서, 혼자 다 들고 갈 수 있나 안 그래도 걱정했는데 출국 3일전에 미끄러져서 왼쪽 어깨를 삐었다. 다행히도 예전에 어깨 회전근개 파열로 찾았던 정형외과가 연휴 마지막 날 문을 열어서 출국 하루 전에 병원에 다녀왔는데, 왼쪽 어깨는 그냥 염좌라 약만 먹으면 되는데 문제는 전에 치료했던 오른쪽 어깨였다. 어깨 안 삐었으면 그냥 출국할 뻔 했는데... 차라리 잘 된 일이라 해야할 지. 주사도 맞고 충격파도 받고 약도 잔뜩 처방받고, 북미 비상약 안내까지 받고 왔다. (소염진통제는 애드빌) 통증은 약으로 좀 잡고, 집 안정되면 다시 재활운동 열심히 하는거야...
어쨌든, 다행히 약 먹고 통증이 좀 잦아들었고 무사히 짐들과 함께 밴쿠버에 도착했다. 압축팩으로 꾹꾹 눌러담아 테트리스 해서 싼 캐리어들이라 다시 쌀 생각하니 벌써 아득하다.

2-1. 그 와중에 놓고 온 것들 많음
비행기에 타니 안 가져온 것들, 미처 못 산것들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어깨 찜질용으로 챙겨둔 작은 아이스팩이랑 냉장 보관해야 해서 냉장고에 고이 넣어둔 유산균 질정도 안 가져왔다. 멀티탭 넣을 자리 없으면 3구라도 챙기지 뭐, 했는데 남는 공간은 없었지만 3구도 안 챙겼고, 아빠가 굳이 사가라던 손 세정제는 공항 약국에서 다 떨어져서 결국 못 샀다. 눈썹칼도 새 거 사려고 했는데 못 샀네. 없으면 죽는 건 아니지만 챙겼어야 하는데 아쉽다. 출발할 때 왠지 눈썹칼 못 살거 같아서 쓰던 거 급하게 넣어온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

3. 장거리 비행은 복도 좌석
창문샷도 찍어야되고 하늘도 보고 싶고, 도착했을 때 설레고도 싶고 자리 비켜주는 거 귀찮아서 그동안 늘 창가 좌석을 고수했는데 이번엔 자리 지정을 너무 늦게 해서 남아있는 좌석이 없었다. 그래도 가운데는 싫어서 복도 좌석으로 했는데.. 확실히 장거리 여행에는 복도 좌석이 편하네. 눈치 안보고 안 참고 불편할 때마다 일어날 수 있어서 좋았다.

4. 밴쿠버 행 강아지 이동봉사
한국에서는 대형견이나 인기 없는 견종, 믹스견, 아픈 강아지들은 입양이 잘 안 된다고 한다. 유기견을 입양하는 분들도 많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버려지는 강아지들이 훨씬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 입양되기 어려운 아이들은 해외로 입양을 간다. 이때 비용과 여러 컨디션 문제로 이동 봉사자를 많이 구한다고. 예전부터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밴쿠버는 그렇게 해외입양견을 많이 보내는 도시라고 했다. 한국은 예전에는 사람 아기도 해외로 수출하고 강아지도 수출하는구나, 출국 전 만난 전 회사 팀장님에게 해외입양견 이동봉사에 대해 설명하자 그렇게 말씀하셨다. 왜 그럴까, 아무도 묻지도 않았다.
아무튼, 좋은 마음 약간에 나를 위한 미신적인 이유도 조금 붙여서 밴쿠버 이동봉사를 자원했다. 좋은 일 하고 나가는 거니까, 1년 동안 일 잘 풀리게 해달라고 비는 마음으로. 너무 대가성 봉사인가? 이 정도는 좀 봐줘요.

이번에 나랑 나가게 된 갱얼쥐는 두 마리, 애린원에서 구조된 형제 강아지들이었다. 어찌나 성격이 좋은지 한번 짖지도 울지도 않고 처음 보는 나한테도 꼬리를 흔들어줬다. 인천에서는 별 무리 없이 수속을 마무리했다. 다행히도 대한항공은 강아지 칸이 따로 있어서, 화물로 가도 온도/습도도 조절되고 소음도 화물칸보다 적어서 강아지들한테 좋다고 한다.
좋은 일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불안하기도 했다. 나도 캐나다를 처음 가는 거고, 비자 받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대서 괜히 정신 없는데 무리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역시나 밴쿠버에서는 약간 피곤하긴 했다. 아무래도 비자와 강아지 둘 다 신경써야 하는데 비행기도 조금 연착되고 입국 심사와 비자 발급도 오래 걸리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딜레이된데다 출국 전부터 에너지 쭉쭉 뺀 내 체력도 슬슬 고갈되고. 그래도 큰 어려움 없이 댕댕이들 찾고 검역하고 픽업 보호자와 입양자에게 잘 인계까지 했다! 출발하기 전에는 아직 입양처가 안 정해졌다고 했는데, 비행하는 동안 입양자가 결정된 모양이었다. 감격에 차서 애기들 맞이하는 입양자에게도 감사 인사를 듣고 댕댕이들이랑 인사 했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가끔 생각날 것 같아. 둘 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착하게 잘 기다리다가 또 꼬리를 파닥파닥 흔들어줬다. 귀여운 것들. 개천국이라는 캐나다에서 부디 행복하게 잘 살아, 로건 로웰아.

 

 


4-1. 워홀러의 해외입양견 이동봉사 순서
짐을 먼저 찾고 워홀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강아지(큰 짐 수하물)도 찾고 비자를 받아야 하는지, 강아지 찾기 전에 비자를 먼저 받아야되는지 조금 헷갈렸는데 해외입양 진행해주시는 단체 분께서 확인해주셨다. 그러고도 불안해서 블로그 찾아보니 토론토로 워홀 가신 분도 똑같이 진행했더라. 1) 내 짐 찾고 2) 워크 퍼밋 비자 받고 3) 강아지 찾고 검역 순서로 진행하면 된다.

나는 입국 심사+비자 발급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강아지들 덜렁 버려져있을까봐 안절부절 했는데, 한국인 직원 분이 날 찾아오셔서 체크해주고 갔다. 다행. 강아지 검역 신고는 사실 준비한 서류만 내면 되는데, 나는 담당자가 뭘 잘 몰랐는지 자꾸 다른 증명서를 내놓으라고 해서 조금 헤맸다. 증명서 여기 다 있다니까, 짜증내면서 들어보라고 뭘 달라는데 나는 또 못 알아듣고. 여기서 식은땀을 좀 흘렸지만; 한국에 계신 담당자분도 바로바로 연락되고, 애초에 서류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담당자가 여기저기 전화해보더니 혼자 납득해서 보내줬다.
(commercial이냐고 묻길래, 나는 아니라고 rescue dog이라고 했는데 캐나다에선 쉘터로 가는 유기견 모두 commercial dog맞단다. 내가 낸 서류에도 commercial invoice라고 써있었다..ㅎㅎ 몰랐지, 난. 상품으로 팔거냐고 물어보는 줄 아니고 극구 아니라고 했넴)

5. 오늘은 내일은
오늘은 숙소 와서 잠깐 쉬다가 근처 태국 음식점에서 저녁 먹고 내일 아침 먹을거 장 봐서 들어왔다. 마트에서 술 안 파는 거 좀 충격이고요. 술 덜 마시기로 했지만, 그래도 충격이네요. 내일도 그냥 적당히 돌아다니면서 놀려고 했는데 미리 와있는 선배 워홀러 친구가 시차 적응할 겸 일찍 일어나서 SIN number 만들고 얼른 은행부터 예약하라고 해줬다. 맞다. 여긴 한국이 아니니까.... 나중에 빡치지 말고 미리미리 해둬야지. (하면서 노닥거리는 중)

 

으 새폰 사고 싶다!!!!!!

 

 


내일은 할 거 하고 바닷가 놀러가봐야지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