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킹홀리데이 #.5 적응기

2020. 2. 2. 14:46in Vancouver

며칠 만에 시차 적응도 나름 잘 해가고, 불안하던 마음도 조금 가라앉았다. 여전히 치노 얘기만 나오면 울컥하지만, 치노도 밥을 먹었다고 하고(아직 많이 울지만) 기다려 볼 일이다.

#NewComer
나는 뉴커머니까, 모든 경험이 다 처음일 수밖에 없지만 처음이란 건 그래도 역시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3일 동안 여행자의 기분으로 머물렀던 에어비앤비에서 한 달 동안 지내게 될 셰어하우스는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고려해서 잡은 건 아니었는데, 다행히도 그랬다. 하우스메이트들이 친절해서, 하루 전에 열쇠를 받으면서 캐리어를 먼저 옮겨 두었다. 하필이면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내 짐 들어주느라 하메들이 고생해줬다..ㅎㅎ

첫 내 방은, 생각보다 넓었고 좋았다. 애인이 영통으로 방 모습 보더니, 일 년도 살 수 있겠다고 할 정도. 처음으로 집을 나와 혼자 살아보는 내가 보기에도 한국의 내 방보다 넓어 보였는데, 네 명이서 작은 주방을 공유하고 주방 옆 거실에 사람이 사는 건 아무래도 적응이 잘 안된다. 공용 거실에는 작은 테이블이 있고 거기서 식사를 할 수 있는데 바로 옆에 하메들이 지내는 공간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좀 더 신경을 쓰게 된다. 먹는 소리도 신경 쓰이고. 지금 하메들은 착하고, 뉴커머인 내게 많은 정보를 알려주려고 해서 다행이고 많이 고마운데, 다음 집을 구할 때는 하메가 어떤 사람일지 알 수 없으니... 거실 셰어 없는 곳으로 조금 더 신경 써서 찾아야겠다.

첫 면접은 한국에서 어떻게 연이 닿았던 한국 회사. 마케팅 팀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대서 지원하게 됐는데, 밴쿠버에 와서 보니 다운타운에서 정말 너무나도 먼 곳이었다. 구글맵으로만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곳이었고 면접날 비가 어마무시하게 온 데다 중간에 지하철을 잘못 타는 바람에 저 멀리 써리까지 갈 뻔했다. 다행히 정시 조금 전에 도착해서 면접을 봤고, 과제와 2차 면접이라는 결과를 안았다. ...사실 보수적인 한국 회사인데다 오피스 업무라지만 시급도 최저에, 영어도 안 써서... 고민이 좀 된다. 내 커리어를 유지하려면 최소한 이름이라도 걸어놔야 되지 않을까 싶긴 한데 이 일을 계속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데 스트레스 받았던 그 일을 계속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과제는 준비하겠지만, 여러모로 고민이 많아진다.

첫 룸 뷰잉은 회사에서 다운타운으로 오는 길에 두 곳이었다. 첫 번째 집은 위치도 가격도 좋았지만, 카펫 바닥이라 비염에 별로 안 좋을 것 같았고 세탁이나 건조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조금 걸렸다. 두 번째 집은 비를 뚫고 가는 중에 지인이 집을 계약했다며 뷰잉 취소 연락을 받았다. 아니, 빌딩 바로 앞까지 왔는데 이게 뭐람. 서운한 티를 조금 내면서 답장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 집주인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미안하니 커피라도 보내주고 싶다고. 메일을 알려드렸더니 e-transfer로 돈을 보내주셨다. 음, 기분이 한결 좋아졌고 감사히 커피 한 잔 마시며 집으로 돌아왔다.

#잉글리시베이 #동네바다
내가 캐나다에 살러 간다니까 친구가 굉장히 의아해하며 물어봤다. 네가 좋아할 날씨가 아닌데? 전 회사 팀장님도 캐나다 재미없고 날도 안 좋다며 차라리 몰타에 가라고 했다. 둘 다 내가 바다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아는 이들이다. 아쉬웠지, 바다. 프리다이빙도 하고 싶고 그냥 바다에 잠겨만 있어도 행복하니까. 몰타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뭐, 여러 이유로 캐나다를 선택했고 어쨌든 밴쿠버에도 바다가 있다. 통영에 다녀왔을 때, 동네 바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걸어서 언제든 갈 수 있는 바다가 있었으면 좋을텐데. 그 동네 바다가 생겼다. 딱 한 달 살 다운타운 집에서 걸어서 10분에서 15분만 가면 바다를 만난다. 바다에 걸어가 보니 여름까지 여기에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길다란 바다 산책길을 걸으면서 밴쿠버가 조금 더 좋아졌다.

밴쿠버에서의 일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