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의 습격

2020. 3. 18. 16:55in Vancouver

캐나다에 온 지 이제 50일. 상황이 아주 심난하다.

정말로 습격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며칠간 이상하게도 운이 좋아서 기분이 좋다 못해 살짝 불안하기까지 했는데, 불안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만 같다.

운 좋게도 렌트비가 놀랍게 싼 집으로 이사를 했고, 집도 좋고 같이 사는 가족들도 좋았다. 상냥하고, 도움을 많이 주셨다. 이전에 계약하기로 했다가 이곳에 오기로 해서 취소한 곳에서 디파짓도 돌려받았다. 사실 내가 성급하게 계약한 거라 디파짓 못 받을 줄 알았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전액 돌려받을 수 있었다. 친구는 그 집주인을 천사라고 불렀다. 내심 기분이 좋았다. 내가 운이 좀 좋았구나.

백수로 지낸 지 한달이 조금 넘었을 때 드디어 일을 구했고, 첫 출근을 했다. 엄밀히 말하면, 첫 출근은 작은 패스츄리 가게로 했고 이틀간 트라이얼 근무를 했었다. 다행히 한국에서 하던 마케팅 직무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기쁘게 첫 출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말 타이밍도 운도 좋았지, 기분이 좋았다. 캐나다 내 신종 코로나 환자가 급증하고 트뤼도 총리가 캐나다 보더 폐쇄를 발표하기 전까진.

트뤼도 총리 담화는 내 첫 출근날에 있었다. 출근하자마자 어수선한 분위기에 컴퓨터 세팅을 하랴, 사람들과 대화하랴, 눈치 보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트뤼도는 그날 담화에서 국경 폐쇄를 이야기했다. 거리가 텅텅 비기 시작했고, 많은 회사들이 재택근무를 시작하거나 고용을 취소했다. 스타벅스와 팀홀튼이 매장 운영을 접고 투고만 운영하겠다고 나서고, 정말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거나 딜리버리와 투고만 운영을 하기로 했다. 내가 출근하게 된 회사도 요식업이다 보니, 당장 영업 자체가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출근 첫날 잘리는 거 아닌가, 종일 눈치를 봤다. 사실 풀타임으로 계약하기로 한 거였는데, 이미 파트타임으로 고용 형태도 바뀐 상태였다. 출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직원을 자르기는, 내가 봐도 너무 쉬워 보였다. 심지어, 회사에서는 마케팅이 위기 상황에 그리 도움이 되는 직무도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당장 매장 매출이 반의 반으로 뚝 뚝 줄고 있는 상황이니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첫날을 마치고 집에 왔다. 그래도 이 상황에서 파트타임으로라도 일하는 게 어딘가, 드디어 렌트비를 캐나다에서 번 돈으로 낼 수 있겠다, 스스로를 위로했다. 둘째 날도 상황은 비슷했다. 오히려 조금 더 안 좋았다. 매출도 그랬고, 내 상황도 그랬다. 적응도 하기 전에, 사실 세팅도 마치기 전에 정신없는 오더가 날아들었고 나는 좀 버벅거렸다. 스스로를 탓하진 않아야지, 애써 마음을 다잡아도 상황보다는 자신을 탓하게 됐다. 고작 이틀째인데 정말 빡센 하루였다고, 친구들에게 고기를 먹어야겠다고 투덜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밥을 대충 먹고,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심란한 마음 위스키 한 잔 마시며 드라마를 보려고 하는데 집주인이 나를 불렀다.

방을 비워달라고 했다. 기한은 한 달.

최소 계약기간을 명시한 계약서를 쓸걸, 나보고 대체 어딜 가라는 거지, 자기 가족들도 밖에 나가는데 나 쫓아낸다고 해결될 일인가. 온갖 생각이 머리를 떠돌았다. 설마 렌트비를 깎아주시려나, 기대한 게 너무 바보같았다. 눈물이 나서 대충 대화를 마무리하고 방으로 쫓기듯 돌아왔다. 회사도 어떻게 될지 모르고, 그런 만큼 일은 더 잘해야 하고, 그런데 집까지 새로 구해야 한다니. 막막함에 눈물이 쏟아졌다. 현실에서 발을 떼고 약간은 둥둥 떠서 살았던 50일만큼의 무게가 순식간에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울만큼 다 울고, 당장 내일부터 갈 룸 뷰잉 약속들을 잡았다. 집 보기는 이제 끝인줄 알았더니 이사온지 한 달도 안돼서 이게 무슨 일이람. 한숨이 푹푹 나서 친구들과 애인에게 하소연을 한참 했다. 집에 갈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본다. 그렇게 예쁘다는 밴쿠버의 여름도 못 봤는데 이렇게 돌아갈 수는 없다. 이왕 돈 쓰는 거 좀 더 쓰더라도, 좀 더 붙어있어 보자. 조금 상황을 정리해보고, 집주인이랑 얘기도 다시 해야겠다. 이사비라도 달라해야지 진짜 억울해서 안 되겠다. 

게다가 한국이 그리워지려는 찰나, 내가 한국을 뜨고 싶었던 이유를 목도했다. 아시안 여성으로 살아가는 캐나다의 민낯도 갑자기 본 것 같지만....... 아이고, 아이고. 고달프다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