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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女僧) / 백석
여승(女僧) / 백석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가지취의 냄새가 났다.쓸쓸한 낯이 녯날같이 늙었다.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늬 산(山) 깊은 금덤판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여인(女人)은 나 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 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_백석《사슴》(1936) 수능이 끝난 해 겨울 어느 날 처음으로 시를 보고 울었다. 언어영역을 좋아했지만 단 한 번도 이 시를 보고 눈물이 난 적은 없었는데 수능이라는 속박이 ..
2014.08.16 -
철의 아들 허공의 딸
나탈리수퍼보이와 못난 투명소녀철의 아들 허공의 딸그는 멋진 왕자님, 영웅난 없어 수퍼보이와 못난 투명소녀모두가 꿈꾸는 아이죽지 않는 불멸의 아들난 없어 난 날고 싶어마법처럼 공간을 가르며난 날고 싶어멀리 사라질 거야 수퍼보이와 못난 투명소녀엄마가 원하는 소년우리 영웅 영원한 아들걘 없어, 날 좀 봐 다이애나너도 잘 알잖아너는 나의 기쁨 자랑 예쁜 딸,난 널 사랑해사랑할 수 있는 만큼 나탈리자 여길 봐 못난 투명소녀분명히 여기 있어어서 찾아 더 늦었다간사라질라 나탈리/게이브수퍼보이와 못난 투명소녀철의 아들 허공의 딸그는 멋진 왕자님 영웅 / 나는 멋진 왕자님 영웅난 없어 / 넌 없어난 없어 / 넌 없어난 없어 / 넌 없어난 없어 / 넌 없어 넥스트 투 노멀 프레스콜에 갔던 건 얼마나 다행인지 초연은 못봤지..
2014.08.14 -
슈퍼문
140811 2:12 am 슈퍼문 언젠가 가족끼리 차를 타고 어딘가 다녀오던 밤, 차에서 창 밖을 구경하다가 빌딩에 걸린 하얀 빛을 봤다. 아주 밝고 하얗게 빛나고 있었지만 분명 단단하고 동그란 형체였다. 처음엔 당연히 조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평선에 걸리고 건물 사이로 보일만큼 큰 조명이 있을리가 없지. 너무 커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넋을 잃고 달을 바라보다가 집에 도착했는데 진짜였는지 꿈이었는지. 지금까지도 신기한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그날도 달이 지구에 가까워지는 날이었던 걸까. 사진 속 슈퍼문들이 내 기억 속 그 달과 닮아 있었다. 그 후에도 몇 번 슈퍼문이 뜬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기다려서 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그 때만큼은 물론, 평소 달과도 그렇게 차이나게 큰 것 같지..
2014.08.11 -
Thames River, London (2013)
런던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꼽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템즈강은 그 중에서도 참 좋았다. 리젠트 스트릿이나 피카딜리 서커스가 Great Britain! 같은 느낌이었다면(그래서 좋기도, 그래서 정이 안가기도 했다) 템즈강은 그야말로 런던의 일상같은 느낌. 사실 일주일 남짓한 짧은 기간동안에도 느껴졌던 런던의 오만함에 살짝 질려있던 터라 마지막 날의 템즈강 산책이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이날은 보이지 않는 뱅크시의 흔적을 찾아 런던타워부터 다시 런던타워까지, 템즈강 한 바퀴를 뺑 돌았다. 혼자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혼자 걷게 되었는데 템즈강을 걸으며 런던 사람들을 구경하기에는 혼자가 더 좋았다. 다리 밑에서 열린 중고마켓에서 오래 된 앨범을 고르고 있는 양복입은 아저씨나 전화를 받으며 바쁘게 움..
2014.08.08 -
꽃단장 고양이
꽃단장하는 고양이를 만났다 길 한복판에 누워, 누가 지나가든 말든 쳐다보든 말든 사진을 찍든 말든, 마이웨이 세수 중인 노란 고양이 가만히 보고 있으니 시선 한번 꾹 맞춰주고 다시 열심히 꽃단장 :*)
2014.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