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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하여
제목을 너무 애정없이 지은 것 같지만 달리 더 붙일 말이 없다. 지난 2014년에 나는 최고의 수업들을 만났다.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놓칠 뻔한 시간을 잡아 탔다. 오랜 고민 없이 골라잡은 두 수업이 이토록 공명하는 수업이라는 것은 내게 행운이다. 동시에 만나 더 깊숙하게 빠져들 수 있었던 수업을, 그 이야기들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은 낭비인 것 같아 수업리뷰를 해보려 한다. 두 수업 모두 영상과 영화에 관한 것이라서 달리 더 붙일 말 없이 영화에 대하여인 것이다. 영화란 것은 생각보다 아주 많은 것을 포함했다. 그런 것들의 모래는 결국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휘적휘적 담아보다 보면 손금 사이 끼어있는 반짝거리는 무언가라도 있을테니까, 손을 모래 속에 푹 담가보려 한다. 사실 아무것..
2015.01.12 -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라는 이름의 학교에서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여름에도 겨울에도낙제는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하루도 없다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과 같았다 오늘은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을 무엇 때문에 너는쓸데 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너는 사라진..
2014.11.15 -
연극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벗어나지 않고 벗어날 수 없고 그들만의 규칙을 지키며 타인의 접근을 철저히 막는, 부족.남명렬 배우가 연기한 크리스토퍼는 언어를 신봉하지만 소통은 전혀되지 않는 인물이다. 자기는 옳고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는 그 태도. 연상되는 인물이 있어 가장 강렬했고 가장 불편했고 가장 보고 있기 괴로웠(짜증났)다. 빌리와 실비아의 이야기보다도 크리스토퍼와 다른 가족들의 관계에 집중하게 된 것도 아마 그 때문인 것 같다. 무서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꽉 막힌 답답함, 전혀 소통되지 않는 대화들 때문에 너무 무서웠다. 소리는 나고 있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빌리가 소리를 거부하고 수화를 택한 것도 그 때문이겠지만 빌리 역시 실비아와 '대화'하지 못하는 상황에 또다시 암전... 뚜뚜.... 마지막은 ..
2014.11.15 -
연극 <로풍찬 유랑극장>
이 극장은 두 시간으로 줄인 천 만 년을 여섯 평으로 좁힌 억 만 평을 가리고 있다네이 극장의 어둠 속에서 똑똑한 사람은 바보보다 더 바보스러워지고 바보는 똑똑한 사람보다 더 지혜로워진다네이 극장의 어둠 속에서 현해탄은 남대문으로 남대문은 자전거로 자전거는 커다란 돌로 바뀐다네이 극장의 어둠은 황금빛을 푸른빛과 붉은빛으로 나누지 않고 검은빛은 하얀빛으로 푸른빛과 붉은빛을 황금빛으로 모아낸다네극장 안에는 극장 밖에 꺼진 밝은 세상이 있다네 극장 안에는 극장 밖에 꺼진 밝은 세상이 있다네 ... 소를 가죽외투로 곰을 털모자로 돼지를 군화로 만드는 이 세상에서네가 하지 않으면 그 누가 가죽외투가 소의 울음소리를 내도록 털모자가 으르렁거리는 곰이 되도록 군화가 새끼돼지를 낳도록 할 것인가 호랑이를 방석으로 말을..
2014.11.01 -
연극 <프랑켄슈타인>, 인간의 원죄...?
스포일러 주의 인간의 원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던 연극 원죄는 과연 있는가? 인간의 공포심이 원죄일까, 인간의 외로움이 원죄일까, 아니면 '인간'이 원죄일까? 빅터는 공포때문에 피조물을 버렸고, 버려짐으로써 크리처는 첫 번째로 괴물이 되었다. 인간들은 공포에 질려 크리처를 미워하고 때리고 버렸고 크리처는 두 번째로 괴물로 자랐다. 단 한 명, 사랑과 애정으로 그를 품어준 드 라쎄 덕분에 지식뿐 아니라 감정, 감각, 삶을 느껴가고 인간이 되고 싶어했지만 그의 아들과 며느리는 공포로 인해 크리처를 몰아내고 크리처는 한 번 더, 그리고 확실히 괴물이 된다. 드 라쎄의 집에 불을 지르는 크리처의 모습은 분명 섬뜩하고 두려운 괴물이었지만, 동시에 크리처는 여전히 순수했다. 순수해서 오히려 더 지독하게 무서워질수..
2014.10.29